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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고개는 넘을수록 슬픈 것이었다

등록 2023-02-09 19:10수정 2023-02-10 02:37

서울 중계동 104번지 일대 백사마을 고갯길. 연합뉴스
서울 중계동 104번지 일대 백사마을 고갯길. 연합뉴스

[사사로운 사전] 원도 | 작가·경찰관

고개를 든다. 아직 넘어야 할 고개가 까마득하다. 장비를 채운 가방의 끈이 어깨를 파고드는 것만 같다. 이 길의 끝에 정말 사람이 살까? 고개는 너무 가파른데다가 차량은커녕 유모차 한대도 겨우 지나갈 것 같은 길인데? 반신반의하며 발걸음을 옮긴 끝엔 정말 사람이 있었다. 가족이 고독사할 동안 안부도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군 채로. 변사자 검시를 끝내고 고개를 내려가는데 동네 할머니가 뒤로 걸어가고 계셨다. 가파른 경사에 겨우 떼어보는, 후들거리는 두다리. 지는 해도 할머니의 걸음을 따라 조금은 느리게 멀어졌다.

서울이라고 어찌 번듯한 도로만 있을쏘냐. 외지인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길이 수두룩하다. 고개는 어찌나 굽이지는지. 서울에 산이 없는 게 아니다. 단지 그 위에 있는 게 식물의 형태를 하지 않았을 뿐. 곳곳에 박힌 고개에 가지 많은 나무들마냥 다세대주택이나 연립가옥들이 자리잡고 있다.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달동네에서의 걸음은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워진다. 고개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발걸음 앞을 바라보며 조심조심 넘어가야만 하는 고개.

입구가 어딘지 한참을 헤매다 도착한 곳.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불이 났다고 했다. 소방차와 경찰차 모두 좁은 길을 통과할 재간이 없어 소방관 경찰관 모두 자기 몫의 장비를 한 아름 짊어지고 거친 숨을 뱉으며 고개를 올랐다. 작은 방에서 시작된 불은 경계가 불분명한 자취방 일대를 모두 집어삼켰지만, 다행스럽게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 최초로 화재가 발생한 방에 월세로 생활하던 외국인 유학생은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더듬더듬 말하다가, 번역 어플을 켜고 화면 보여주기를 반복하다 기어코 고개를 떨궜다. 품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은 반려견이 안겨 있었다. 홀로 죽어간 강아지 위로 주인의 눈물이 소낙비처럼 떨어졌다.

두달 전 나눈 연락이 끝이라는 어느 가족의 신고. 좋지 않은 상황임을 직감하고 방독면을 챙겨 나선 곳도 끝없는 고개. 역시나 차로 이동할 수 없어 도보로 도착한 그곳은 단출한 반지하 방이었다. 고개를 넘어옴과 동시에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노선. 방 입구에는 배달원 복장을 한 동생이 손에 휴대폰을 꽉 쥔 채 굳어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기에 벅찼던 형이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동생은 그간의 세월을 전해줬다.

서랍장 빼곡히 조립된 프라모델. 힘찬 구호를 외칠 것만 같은 자세를 취한 만화 주인공들. 천장까지 쌓인 책. 그 위에 나이테처럼 내려앉은 먼지. 방 밖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싫었는지, 방 한쪽에서 처리한 각종 오물의 흔적. 그사이 홀로 사망한 변사자. 너무 늦게 발견된 젊은 청년의 마지막. 지하 통로가 지나치게 좁아 결국 동생까지 팔을 걷어붙인 다음에야 겨우 방 밖으로 운구할 수 있었다. 운구차도 진입하기 힘든 골목길이어서 우리는 동생과 함께 변사자가 누운 들것을 들고 고개를 한참이나 내려와야 했다. 동생의 고개는 쉽사리 들리지 않았다.

고개는 ‘사람이나 동물의 목을 포함한 머리 부분’, ‘산이나 언덕을 넘어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 ‘일의 중요한 고비나 절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가지런한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그만둔 어느 젊은이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유독 험난했던 고개를 넘어 도착한 집. 치켜 올라간 채 굳어 있는 젊은이의 고개.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테이프를 발라 공기도 빠져나가지 못해, 그의 마지막 숨이 남아있는 것만 같던 집안의 온도. 정성스러운 글씨로 의욕 넘치는 미래를 써내려간 다이어리. 사망한지 최소 한달. 사는 게 바빠 그 시간 동안 연락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짓눌린 유가족의 고개.

고개는 넘을수록 슬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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