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계묘년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올해 핵심 추진 과제로 노동개혁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연초부터 대통령과 정부·여당, 검·경, 국정원, 그리고 언론들이 ‘노동'을 표적으로 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연금·교육·정치 개혁 등을 말하지만, 무엇보다 노동 이슈에 한국 사회 파워 엘리트의 실체적 이해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노동개혁’은 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집권 세력은 실력으로 지지층을 확대할 길이 없으니, 노동에 대한 공세로 보수 유권자를 결집해 지지율 반등을 꾀하고 있다. 또한 노조와 진보단체들을 불법·불순 세력으로 만드는 사정 정국으로 검찰국가의 정국 주도력을 강화하고 냉전 우익 이데올로기를 재도입하려 한다.
그런 반노동 정치의 전략적 핵심은, 노동시장 안에 현존하는 격차를 노동자들 간의 분열로 전환하는 데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비노조, 대기업/중소기업 종사자가 서로 반목하도록 끌을 밀어 넣는 것이다. 갑은 을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저 을이 부당하게 너보다 많이 가졌어. 내게 힘이 있어. 그가 가진 걸 빼앗아 너에게 줄게. 내가 너의 친구야.’ 이 얼마나 치명적인 유혹인가.
이런 목표 아래 정부와 언론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기득권의 상징으로 놓고 공격하고 있다. 실제 한국 노동시장 내부 격차의 주요인이 종사 기업 규모, 고용 형태, 노조 여부인 만큼, 이 셋을 배열한 상징은 그런 격차의 당사자들 마음에 닿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상징 기술엔 함정이 있다.
대기업·정규직·노조 등 자원을 다 가진 집단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4%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평균연봉은 6천만원 남짓이다.(한국경제연구원 통계) 이들의 지갑을 털면, 이들의 해고를 쉽게 하면, 한국 사회 불평등이 개선될까. 이들을 공격하는 것이 정말 자본과 정권에 중요할까.
진짜 속셈은 따로 있다. ‘노조’, ‘정규직’, ‘대기업 종사자’, ‘기성세대’를 각개격파하는 것이다. 중소기업·비정규 노조원은 노조원이라서, 중소기업·무노조 정규직은 정규직이라서, 비정규·무노조 대기업 사원은 대기업이라서, 중소기업·무노조·비정규 50대는 나이 때문에 ‘기득권’의 오명을 쓰고 제물로 바쳐진다. 이렇게 거의 모든 노동자가 표적이 된다. 각각의 프레임에 정밀히 대응해야 한다.
우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격차는 많은 사람이 고민해온 구조적 문제지만,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을 정규직에 묻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를 외치면서 비정규직과 원·하청 착취 구조의 정점에 있는 대기업의 횡포를 말하지 않는다면, 정규직 고용 유연화를 주장하면서 불안정한 위치로 떨어진 사람을 위한 안전판에 관해서는 목소리를 낮춘다면, 그것은 위선이거나 기만이다. 기업·노동·국가의 큰 구조를 숨기고 노동 내 격차만 비추는 모든 주장은 위태롭다.
노조가 특권이라는 주장도 잘 짚어야 한다. 노조가 있는 노동자의 처지가 더 낫다면 더 많은 노동자, 나아가 모든 노동자가 노조의 보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게 노동개혁이다. 더구나 노조 조직률은 2016년 10%에서 2021년 14%까지 올랐는데, 이때 대기업 조직률은 하락했고 중소기업은 상승했다. 또한 정규직 노조원은 8%, 비정규직은 57% 증가했다. 많은 경우 노조는 약자의 방어막이다.
노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소문도 노동자들을 위축시킨다. 하지만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노조 신뢰도 2013~2020년 평균값은 국회, 정부, 대기업보다 높았다. 특히 최근 몇년간 신뢰도가 올라 언론사보다 높아졌다. 이들이 노조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끝으로 ‘나쁜 노동자’ 프레임은 ‘세대 갈등’ 프레임과도 붙어 있다. 기성세대 정규직이 노조로 기득권을 지키기 때문에 청년들은 노조에 반감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2020년 노조원 중 최대 연령집단은 40대와 30대였고, 연령대별 조직률도 이 연령대가 가장 높다. 신민주·정흥준의 최근 연구는 청년세대일수록 노조의 중요성을 더 크게 인식하며, 가입 의사도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처럼 현 정부 ‘노동개혁’ 프레임은 많은 허구와 간계를 담고 있다. 거기에 대응하는 명확한 논리와 전략, 선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인 과제는 일하는 사람들이 균열을 넘어 연대할 수 있는 전향적 대안을 제시하는 일일 것이다. 바로 그 균열의 토양 위에서 분열의 기술이 작동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