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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만 나이, 세는 나이와 시간의 측정

등록 2023-01-11 19:06수정 2023-01-12 02:04

프랑스 시골을 배경으로 가톨릭에서 하루에 세번 종을 칠 때에 맞춰 삼종기도를 올리는 남성과 여성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시골을 배경으로 가톨릭에서 하루에 세번 종을 칠 때에 맞춰 삼종기도를 올리는 남성과 여성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최근 ‘만 나이'와 ‘세는 나이'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접하면 지금 세상에서 나이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둘 사이 차이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어서 적당히 병행해도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뉴스에 보도된 질문 ‘만 나이로 통일하면 정년이 늦춰지는가'만 보아도 나이 기준의 법적인 파급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점점 사회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그에 따른 (국제적) 정형화가 필요해지고 다수의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정보가 중요해진다. 수학자 입장에서는 ‘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아주 간단한 예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정도 기초적인 문제로 또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억지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자체를 수학교육의 성공 사례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런 비판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수에 익숙하고 정량적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문맹률이 0이 되는 것만큼 좋은 일이다.

사실 나이는 가장 기초적인 종류의 ‘시간 측정'이기 때문에 훨씬 광범위하고 심오한 개념들과 쉽게 연결된다. 예를 들자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처음 배울 때 소위 ‘쌍둥이 역설'을 접한다. 쌍둥이 둘중 하나가 빠른 속도로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지구에 남아있던 형제보다 나이가 적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 고등한 이론까지 안 가더라도 시간의 측정과 관련된 고민은 인류와 역사를 같이해 왔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일상생활에서의 정확한 시간의 중요성을 짐작하기 어렵다. 가령 보통 사람이 자신의 나이를 어느 정도로 정확하게 알아야 했을까 궁금해진다. 실천민속학 쪽 한 논문에 의하면, 1296년 고려 충렬왕의 환갑이 국사에 나온 첫번째 환갑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왕의 환갑이 기록된 것과 보통 농민의 나이가 추적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사실 일반인의 인식이나 생활관습은 대체로 기록되지도 않고 온갖 근거 없는 이론의 대상이 되기도 해 역사학의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객관적인 시간'의 중요성은 더욱 모호하다. 가령 ‘중세 유럽인은 연도를 알았는가' 같은 질문엔 상당히 답하기 어렵다. 많은 나라에서 ‘XX왕 즉위 Y년' 같은 기준을 사용해오기도 했지만, 중앙집권이 약했던 대부분 지역에서 일반인이 그 정도 보편성 있는 시간을 인식하고 있었을 지도 의문이다.

유럽 달력의 역사만 보더라도 시간의 측정이 사회, 종교, 일상생활 등과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져서 변해 왔는가 짐작할 수 있다. 일상적인 자연이 결정하는 주기는 세개가 있다. 지구 자전주기인 하루, 달 공전이 결정하는 한달, 지구 공전주기가 정하는 한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세가지 사이 비율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당한 고민의 대상이 돼왔다. 가령 일년을 딱 365일로 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구의 공전은 약 365.25일 걸린다. 그래서 로마의 율리우스 시저 시절 4년에 한번씩 오차를 정정(하루를 추가)해주는 ‘윤년' 을 제정했다. 그러면 4년 동안 일년의 길이의 평균은 정확하게 365.25일이 된다. 그러나 일년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면 365.2422일이기 때문에 365.25를 기준으로 한 윤년을 계속 사용하면 달력의 일년이 자연의 일년보다 약간씩 길어진다. 그 때문에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한 춘분 3월 21일과 실제 춘분이 1582년에 이르러서는 10일이나 차이가 생겼다. (부활절을 정하는데 춘분이 중요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제정된 그레고리언 달력에서는 100년에 한번씩 윤년을 거르고 400년에 한번씩 다시 넣는 복잡한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약간씩 문제가 축적된다.

중세 유럽인의 시간관은 교회와 관계 깊었을 것이다. 하루 일과를 관할하는 종의 울림부터 명절과 연도의 측정까지, 때로는 교황 같은 높은 인물 혹은 교구의 신부한테라도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요점은 우리 주위를 둘러싼 매우 많은 정량적 정보가 한때는 다 전문가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교육과 기술의 효과로 누구든지 중세 전문가의 지식보다 훨씬 많은 정보에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는 시간의 측정이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 궁금해진다. 가령 모든 사람이 분 단위까지 자기 나이를 알 필요 있고, 그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일상화되고, 우주여행 때문에 일어나는 차이를 어떻게든 다뤄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굉장히 삭막한 세상일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변화는 익숙해지기 나름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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