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제주 서귀포시의 한 해안도로에 수산업 단체 등 지역 농어민들이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우리 기자
최우리 | 경제산업부 기자
다시 한파다. 옆 단지 아파트 지붕 위로는 난방에 사용할 물을 데운 하얀 수증기가 쉬지 않고 피어오른다. 수도권부터 꽁꽁 얼어붙은 이달 중순,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의 한 해안도로를 걷고 있었다. 키 작은 양식장 건물 벽면에는 붉은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농수산업 무시하는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 철회하라.”
에너지 정책은 정치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러시아 등 자원 강국의 에너지 무기화와 화석연료에서 탈탄소 연료로의 전환 과제 등 에너지 이슈가 많은 한 해였다. 에너지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도 올해 전기요금을 두차례 인상했다. 다만, 올초 대비 산업용 15%, 일반용 18%, 농사용 35~74%씩 물가를 고려해 차등적용했다. 석탄·천연가스 가격이 많이 올라 연료비의 원가 보전도 안 되는 상황 탓이 크고, 농사용 전력요금제를 대기업은 이용할 수 없도록 조치하기는 했다. 그러나 농어민이 많은 제주 등 지역에서는 큰 폭의 인상 앞에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분의 차액 보전 등 당장의 대책을 정부에 요구할 수밖에 없다. 기후·경제위기를 말하며 정의와 불평등 문제를 말하지 않는 이들이 무책임하거나 울림이 적은 이유는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기록에는 흔적이 남아있다. 전기·가스요금 고지서를 읽어보는 것도 한 해를 돌아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보통 냉방용 전기 제품 사용이 잦은 여름에 전기요금이 오르고, 도시가스 난방을 많이 사용하는 겨울에 가스요금이 증가한다. 봄·가을인데도 전기나 가스 요금이 예년보다 많이 나왔다면 냉해나 폭염 등 이상기후가 닥쳤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도시가스가 운영하는 ‘가스앱’을 열어 지난 2년 동안 지불한 전기·가스 요금의 전자영수증을 보니, 변화의 조짐이 여기서도 포착됐다. 요금인상의 영향으로 개별난방을 하는 2인 가정의 경우 전전달 25일부터 한 달 동안 사용한 7~10월분 전기요금과 11~12월분 가스요금은 지난해보다 올해 다 늘었다. 특히 11월분 가스요금을 비교해보면 같은 양(41~42㎥)을 이용했는데 올해가 1만원이 더 올랐다. 이달분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사용량은 20㎥가 더 줄었지만 요금은 1만원 늘었다. 가장 냉방 전력 사용이 많았을 8월분 전기요금도 3만원이 넘은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3만7천원이 나왔다.
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에게 오늘의 에너지 요금은 솔직히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전기·가스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는 학원이나 자영업자, 비닐하우스와 양식장을 운영하는 농어민, 중소사업체 대표 등 이웃들이 말해 온 요금인상의 버거움을 무시할 수 없다. 동시에 지금처럼 거침없이 전기와 가스를 원가보다 저렴하게 이용하는 것은 지구를 위해 온당하고 또 가능한 것일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한국전력이 수십조원에 이르는 적자를 누적하자 정부와 국회는 한전의 채권발행 한도를 늘리고 전기요금도 인상하기로 뜻을 모았다. 환경(탄소 감축)·경제(원가 보전 등 가격 결정 원리·물가 안정 기조 등) 양쪽 영역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비정상적 전력시장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석탄·천연가스 등 수입 연료 의존도가 90% 이상인 ‘불편한 진실’을 계속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순된 현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부족한 자원을 두고 누가 더 희생해야 하는가 하는 정치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희생을 강요받는 이들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지만 목소리는 작은 계층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기후·에너지가 정치 영역의 주요 과제인 이유는 전 국민 에너지 요금 고지서에 이미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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