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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수학은 세계 공동의 유산

등록 2022-11-16 19:13수정 2022-11-16 19:26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해 최초 사칙연산을 만들고 0과 위치값을 사용한 9세기 중앙아시아 수학자 알 콰리즈미의 수학책 <산술개론> 증보판. 위키미디어 코먼스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해 최초 사칙연산을 만들고 0과 위치값을 사용한 9세기 중앙아시아 수학자 알 콰리즈미의 수학책 <산술개론> 증보판. 위키미디어 코먼스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지난 10월 말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에서 ‘수학의 세계사' 학회가 열렸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알제리, 남아프리카, 이란, 중국, 미국 등에서 모인 수학자와 역사학자 들이 참여했고, 강연과 토론주제 또한 지역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다양했다.

약간 놀랍게도, 수학의 역사를 전 세계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연구하는 활동은 학계에서 비교적 새롭다. 대부분 주류 학술서와 대중과학서는 유럽의 관점에서 이집트와 고대 중동을 잠깐 언급한 뒤 체계적인 내용 전개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수학은 ‘서양 문물'이라는 관념이 꽤 오래돼 왔고 가끔 조선시대 학자 최석정 같은 사람이 언급되지만, 수학 발전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또한 인류학적인 시각에 바탕한 수학이 아프리카에서 시작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지만, 보통 그런 내용은 ‘선사시대적'인 관점에서 다뤄진다. 즉, 체계적인 학문으로의 수학은 유럽 전통에서 나왔다는 인식이 세계 어디서나 강하다.

핵심 관건은 문화유산의 소유권 결정 과정이다. 소용돌이 같은 문명의 교류 속에서 어떤 것이 어떻게 해서 중국문화, 프랑스문화, 아시아문화, 아프리카문화 등으로 결정됐냐는 것이다. 물론 대체로 법적인 소유와는 상관없는 세계 인식 속의 소유권이다. 이런 소유의식은 지역의 자부심과 깊은 관련이 있어 많은 사람의 관심 대상이 되고 ‘카롤루스 대제가 어느 나라 사람이었는가' , 혹은 ‘고대 일본어 시집 만요슈에 한국어가 나타나는가' 같은 질문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특정한 개인보다 훨씬 큰 학문이나 문화조류의 경우에는 당연히 소유권을 정하기 어렵고, 질문이 일어날 당시의 지정학적인 상황이 역사적 인식을 결정하기도 한다.

현대 유럽에서 수학의 근원을 고대 그리스로 생각하게 된 경위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고 흥미롭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인식은 18~19세기 민족주의의 부상과 관계가 깊다. 격한 정치사회적인 변동기였던 그 당시 유럽, 특히 영국과 독일어권의 지식인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이상화해 숭배하기 시작했고 자국의 정체성과 고대 문물을 결부시키는 전통의 발명 과정을 거쳤다. 가령 영국은 대영제국의 번창과 고대 마케도니아 제국의 부상을 비교하기 좋아했고 독일 지식인들은 자신들을 그리스 철학의 후계자로 간절하게 여기고 싶어했다. 그들은 또 이런 기이한 학문, 예술적 조류를 민족국가의 낭만적인 형성 이데올로기와 연결했다.

이런 현상과 그 20세기 산물들은 많은 비판적 연구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서 수학의 역할은 깊이 연구되지 않았고, 그와 관련한 어려운 과제들이 이번 학회의 주 논점이었다. 19세기 유럽의 그리스 숭배자들은 ‘수학의 발명'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그리스 문화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싶었기에 이집트는 측지학이 주 관심사였다든지 아랍 수학은 ‘실용성'에 집착해 고대 그리스 수학을 유럽에 전해주는 역할만 했다는 등의 전설에 얽매여 있었다. 이런 풍토 속에 쓰인 수학사를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재편성하는 학술활동이 지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길잡이는 수학의 역사를 지역의 역사로 나눠 생각할 수 없다는 원리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심지가 이집트, 중동, 인도, 중국, 중앙아시아, 지중해 등으로 옮겨 다니며 발전해 온 수학의 총체를 전 세계의 유산으로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적 기반을 다지는 것은 다급한 과제다.

내가 생각할 때 유럽과 고대 그리스 중심 수학사(혹은 문화사)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뛰어난 문화의 소유주는 그 문화를 공부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넓게 번성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현대 유럽의 원조로 여겨지게 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중세 이후 유럽의 여러 교육문화기관이 그 전통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에서 건 유럽 지식인들은 그리스 로마 전통을 흡수하면서 재창조했고, 그런 문화적 조류는 현대 유럽사회의 정치, 교육,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깊은 사고 체계, 아름다운 미술, 감동적인 문학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 전체의 복잡한 협업으로 이뤄진 것들이다. 지금 현재 누구의 것으로 여겨지든 간에 그것을 열심히 읽고, 보고, 개발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세계 값진 문화유산의 주인이 된다.

기원전&nbsp;300년께&nbsp;이집트에서&nbsp;활동한&nbsp;수학자&nbsp;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가&nbsp;기존&nbsp;저서와&nbsp;연구를&nbsp;집대성해&nbsp;만든&nbsp;&lt;스토이케이아&gt;(원론).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원전 300년께 이집트에서 활동한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가 기존 저서와 연구를 집대성해 만든 <스토이케이아>(원론).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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