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미 | 이슈팀 기자
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기사를 싫어한다.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들을 읽으며 파악한 사실이다. 아무도 안 읽는 것보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게 낫겠지만 때때로 마음이 쓰인다. 유독 이번 달엔 내가 재밌게 취재했던 기사들에 부정적 댓글이 절반을 가뿐하게 넘겼다. 대다수 댓글 내용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기가 찬다, 기가 차”다.
세 기사 모두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가족의 일원인 반려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를 주문하고 생일파티를 하는 사람들, 30살 이상 나이 차가 나는 교수와 학생이 평어(반말)로 대화하는 대학 강의실, 생활동반자법이 없으니 친한 친구를 입양해 법적 가족이 된 사람 이야기였다. 이 기사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흐트러지는 사회질서를 걱정한 게 아닌지 짐작해본다. 기존 사회질서를 더 많이 체화한 중장년층이 ‘앞으로 나라가 어찌 되려고…’ 같은 마음에서 댓글을 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포털 기사에 댓글을 많이 남기는 이들은 주로 중장년층인 40~50대 남성이라는 기사와 연구도 있으니 억측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들이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만큼 새로운 내용은 아닌 것 같다. 학교와 기업을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수년 전부터 닉네임을 부르며 반말을 사용하는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다는 소식은 수없이 소개됐다. 한국 가구 3분의 1은 1인 가구이고, 성애적 관계든 아니든 혼인하지 않은 동거가족도 늘고 있으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한겨레는 왜 이런 것만 기사로 쓰느냐”와 같은 댓글을 보면 좀 억울할 때도 있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소재, 세상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포착해 보여주는 게 내 업무 중 하나일 뿐이다.
‘왜 이런 것만 쓰느냐’는 반응은, 수도권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2030 비혼 여성의 관심사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냐는 질타일지 모른다. 하지만 비인간 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건 서울 마포구 합정·망원동 인근에서 홀로 사는 젊은 여성만은 아니다. 퇴근하고 동네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면 중장년층이나 노년층과 빈번하게 마주친다. 관절이 좋지 않은 강아지를 유아차에 태워 바깥 구경을 시키거나, 품에 소중히 안고 다니는 노인은 한둘이 아니다. 성별과 연령을 떠나 잠깐이라도 반려견 보호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그들이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택시 안에서 머리가 흰 기사님이 “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강아지가 죽었을 때 너무 슬퍼서 엉엉 울게 되더라”고 말했을 때, 초면인데도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결혼과 출산으로 묶이지 않은 가족 형태를 제도 안에 끌어들이는 것도 대도시의 젊은 세대만 간절히 원하거나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지난 5월, 전북 지역에 사는 40대 은서란씨는 함께 사는 친구를 입양하는 방식으로 법적 가족이 됐다. 시골에서 사는 그는 생활동반자법이 가장 필요한 계층은 노년층이라고 말했다. 시골 할머니들은 농번기엔 서로 일을 돕고, 농한기엔 마을회관에 모여서 온종일 시간을 함께 보낸다. 아프면 서로 챙겨주며 병원에 가고, 배우자 사망 뒤 혼자 남은 분들끼리 한집에서 같이 살기도 한단다. 그는 “이분들을 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반문했다.
변화는 우리도 모르는 새 이미 와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결혼과 출산으로 꾸린 ‘정상가족’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한 지 오래다. 그러니 이런 기사를 읽는 독자분들께서는 조금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사를 봐 주시길 부탁드린다. 용기를 내서 자기 삶의 일부를 보여준 취재원들이 상처받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될지는 제도가 다양한 관계를 얼마나 포용할 수 있을지, 그래서 법적 권리와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에 달려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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