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2023년 예산안 시정연설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다. 왼쪽 사진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전면 거부한 채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서는 윤 대통령을 향해 일어서서 박수치고 있다. 정의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좌석 앞에 항의 손팻말을 붙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김남일 | 사회부장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위기는 ‘김진태 사태’라 불러 마땅하다. 검찰 출신 재선 의원인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국회 예산결산위·정무위 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은 거의 없다. 법제사법위 시절 막말 퍼레이드만 진하게 남았다. 레고 미니 피규어는 머리만 뽑아낸 뒤 다른 머리로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양상추’에게 패배하며 44일 만에 물러나자 여기저기서 내각제의 화끈함을 부러워하는 말들이 나온다. 성격 급한 한국 사람에게 딱 맞는 제도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 5년 임기 중 아직 4년6개월이 남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불만이,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를 가차 없이 탄생시킨 권력구조를 눈여겨보게 만든 셈이다. 난망한 개헌 얘기를 떠나서 ‘윤석열 총리’를 가정해보자. 지지율 올랐다며 반색해도 여전히 20%대(갤럽 기준)인 ‘윤 총리’가 속 꽉 찬 김장 배추 한포기와의 오래 버티기 경쟁에서 승리를 장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 윤석열에게 사과는 없다. 내년 예산안 협조를 구하겠다며 국회를 찾아서도 “사과할 일은 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한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대통령 입에서 나온 “이 ××들”은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를 향해 한 말이라고 친절히 설명까지 했는데도 그렇다. 세가지 경우가 되겠다. 김 수석이 시키지도 않은 거짓말을 했거나, 윤 대통령에게 그 정도는 욕도 아니거나, 우리 국회는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하거나. 김 수석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바리캉으로 민 듯 중간이 휑 비어 있는 국회 본회의장을 보며 시정연설을 해야 했다. 정의당은 ‘이 ×× 사과하라!’고 적힌 종이까지 들었다. 국민의힘 의원 누군가 눈치 없이 “힘내세요”를 외쳤다. 윤 대통령은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위로받아야 하는 존재가 됐다. 국내외에서 국정운영 능력을 의심받는 처지인데 또 한번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법하다. 169석이 이렇게 컸나, 협치 필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게 아니라 ‘이 ××들 진짜 안 되겠네’ 쪽이라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정치가 아닌 검찰이 될 수밖에 없다. 다섯달 동안 지겹게 봐왔던 장면이다.
아닌 게 아니라 검찰정권의 검찰은 열일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구속으로 이어진 불법 정치자금 의혹 수사를 두고 정치보복이라 말할 단계는 지났다고 했다. 정당한 범죄수사 영역이라는 것이다. 수사와 재판 결과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정치보복이 아니라면 ‘전 정권도 그랬다’는 남 탓은 인제 그만 들었으면 한다. 전 정권의 실정은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국민은 그런 짓 하지 말라며 이 정권을 뽑아줬는데, 너도 했으니 나도 한다는 바보짓을 왜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그 선봉에 한 장관이 있다.
이 대표의 궁색한 특검 요구에 한 장관은 “수사를 받는 당사자가 마치 쇼핑하듯이 수사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적어도 민주국가 중에는 없다”고 했다. 반쯤 맞는 말이다. 민주국가의 검찰이라면 쇼핑하듯 선택적으로 수사해서도 안 될 일이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가 소식이 없는 것은 전 정권도 그런 식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수사받는 당사자가 쇼핑하듯 수사 결론을 선택하려 하기 때문인가. 대장동 개발 비리 핵심 유동규는 의리 같은 것은 이 동네에 없다고 했다. 주가조작으로 재판받는 도이치모터스 전 회장 아들을 당당히 대통령 취임식에 브이아이피(VIP)로 초청한 것은 그 동네 의리를 지킨 것인가. 이를 따져 묻는 것은 검찰의 일이어야 한다.
“장관직을 포함해 앞으로 어떤 공직이든 다 걸겠다.” 한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자신의 술자리 의혹을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위공직자가 ‘안주머니에 사표 넣고 다닌다’는 말은 들었어도, 다음에 맡을 공직까지 올인하는 선견지명은 처음 보는 신세계다. 다음 자리가 예약돼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 정권과 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한창일 때 ‘법무부 장관 총선 차출론’을 꺼내는 황당한 여당 행태에 은근히 화답하는 것인가. 갈아 끼우는 미니 피규어 정치는 대선, 지선, 총선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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