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34조 3항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추가된 이 조항에 따라 ‘여성의 권익’이 국가 정책의 영역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설치된 정무장관 제2실은 사회·문화 관련 업무에 더해 여성정책 총괄·조정을 덧붙였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호주제 폐지와 가정폭력·성매매 방지 등 여성 의제를 다룰 부처 신설 요구가 거셌고, 15대 대선 후보들은 일제히 여성 권리를 위한 부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1월 여성정책 수립과 총괄, 남녀차별 금지, 여성인력 강화 등의 업무를 맡은 독립부처 여성부를 설치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주무부처가 탄생한 것이다. 여성부는 2005년 보육·가족 업무를 이관받아 여성가족부로 개편됐으나,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 기조 아래 가족 업무를 다시 보건복지부로 이관해 여성부로 축소했다. 이후 2010년 또다시 보건복지가족부의 가족 관련 기능이 여성가족부로 넘어가며, 여성부는 다시 여가부로 개편됐다.
21년간 이름이 3차례 바뀌는 중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낮은 위상’이다. 대한민국의 성평등 정책을 주관하는 여가부는 2022년 현재 예산 1조4650억원으로 정부 예산(607조700억원)의 0.24%, 인원 270명의 ‘초미니 부처’다. 여가부의 주요 기능은 여성정책의 기획·조정 및 권익 증진, 청소년 복지 지원 및 보호, 가족 및 다문화가정 정책 수립 지원, 여성·아동·청소년 폭력피해 예방 및 보호 등이지만 실효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 확보는 항상 뒷전으로 밀렸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6일 여가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성평등 정책을 전담할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는 셈이다. 하지만 지난 7월 공개된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146개국 중 99위를 기록했다. 동일 노동에 대한 남녀 소득 격차 지수는 120위, 고위직과 관리자 비율의 성별 격차는 125위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윤석열 대통령)고 외친다고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여가부 폐지가 아닌 강화를 통해 실질적인 성평등 추진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다.
최혜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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