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기흥휴게소 주유소에 차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최우리 | 경제산업부 기자
기사가 아닌 강의로 시민들과 소통할 일이 종종 있다. 기후변화를 취재하는 기자인 내가 단골로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현재의 기후위기를 부른 건 선진국들 원죄가 더 크지 않냐’는 것이다.
자명한 진실이다. 세계 기후 관련 데이터를 집계하는 연구자들의 연구를 종합하면, 1850~2014년 국가별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 1~7위는 미국·중국·러시아·독일·영국·일본·인도다. 산업혁명을 주도했거나,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들이다.
한국은 16위이다. 누적배출량은 미국의 3.8%, 중국의 8.3%, 일본의 27%에 불과하긴 하다. 그러나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전체 전력원의 65%에 육박하는 인도네시아(24위), 최대 석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25위)보다 순위가 높다. 2015년 이후 배출량을 더하면 한국 순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한국도 선진국 수준의 책임감을 갖고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당연히 요구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설명까지 하면 시민들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진다. 한국도 다른 선진국처럼 기후위기 대응을 미룰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가닿는다.
거대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지목받는 한국 에너지 기업들을 취재하면서, 그래도 전세계 기후위기 대응이 본격 출발한 2020년이나 지난해와는 다른 점이 느껴지기는 한다. 기업들도 화석연료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한 석유산업 관계자는 “가장 두려운 것은 고유가가 지속돼 소비자들이 더는 석유 소비를 하지 않게 될 경우다. 주주들의 기후 대응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석유기업들도 원유 증산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업들은 미래 가능성을 타진하며 다양한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탄소 포집·저장 기술, 수소 활용 등 모든 에너지원과 관련한 투자 소식이 날마다 쏟아진다. 외국 기업이나 다른 산업과 기술 협력도 발 빠르게 추진한다. 다양한 에너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한 대기업 관계자는 “불완전한 기술이라도 일단 도전을 해야 한다. 전기차도 화재가 나지만 계속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기후위기 대응보다 사업성을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한 에너지·원자재 등의 공급난에 소비자와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할지,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이에스지’(ESG) 경영은 어떻게 제도화되어 각국 금융·산업계에 안착할지 등은 여전히 가변적이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기후위기 대응 해답을 푸는 과정은 앞으로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선진국들이 유류세를 내렸다. 지난 6월 미 연방정부는 3개월 동안 유류세의 한시적 면제를 의회에 요구했고, 영국은 올해 봄 10년 만에 유류세 인하를 결정했다. 기름값 50%가 세금인 독일도 올여름 휘발유와 경유 유류세를 내리고 소득공제 혜택을 줬다. 한국 국회도 지난 2일 탄력세율 폭을 조정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유류세 인하 폭은 20%→30%→37%로 확대된 뒤, 이날 2024년까지 한시적으로 최대 50%까지 늘렸다.
지난 6월 국제통화기금이 세금을 줄여 에너지·식량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대신 추가 징수한 세금을 활용해 사회적 취약 가구에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 것과는 반대였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인한 시장의 충격을 일단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가 석유 소비 감축 유도책보다 앞섰다. 개발도상국에 석탄 사용 중단을 요구해온 선진국 역시 석유와의 이별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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