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28일 프랑스 서부 타른에가론주 골페슈에 위치한 프랑스 원자력발전회사 에데에프(EDF)의 원자력 발전소 골페슈의 냉각탑. EPA/연합뉴스
최우리 | 경제산업부 기자
침대 하나인 작은 방이지만 그나마 에어컨이 있어 다행인 날들이다. 거실에는 선풍기가 있지만, 특별한 냉방 기구를 설치하기 어려운 화장실을 갈 때마다 한여름 동남아시아로 여행 온 기분이다. 동남아 여행을 자주 다니는 한 지인은 날씨가 이 지역 시민들의 일할 의지도 꺾을 것이라는 애정을 담은 분석을 했다. 역시 기후가 문명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올해도 40℃를 넘는 기온에 프랑스 정부는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실내활동을 금지한다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에너지 산업, 복지 등 정부의 과제로 이어진다.
원전 56개를 가동 중인 프랑스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원전 국가다.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원전에 ‘진심’인 대표적인 나라인데,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끄는 서유럽 나라 가운데 특히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펴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특이한 점은 최근 남부 지역에서 냉각수 공급과 배출 문제로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거나 가동률이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5일 <블룸버그> 통신은 폭염으로 가뭄이 이어지면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골페슈, 블라예, 뷔제, 트리카스탱, 생탈방 원전 등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강물의 양이 줄어 전체 원전 가동률이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원전 가동률이 낮아지면, 프랑스가 전력 수입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를 서로 수입·수출해서 사용하는 유럽 지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상기후 앞에 원전의 안전 신화는 견고한가? 기후위기 시대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논점이다. 그동안 대형 원전의 단점으로 넓은 부지의 필요성, 오랜 공사 기간, 주민 건강 위험성 등이 손꼽혔다. 각국은 기술의 진보 가능성을 근거로 대용량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원전의 최대 장점과 앞서 소개한 단점을 비교해 다양한 전력원의 비중을 결정해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가뭄, 태풍, 해수온도 상승 등의 문제가 갑자기 튀어나오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의 사고·고장 발생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올해까지 발생한 전체 56건 중 태풍·폭우·지진 등 발전소 외부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고장이 25%(14건)로 1위였다.
월성원전은 2020년 9월 한반도 동남 지역에 들이닥친 태풍에 실려 온 염분이 전기 설비에 불꽃을 일으키며 멈췄다. 한울 1·2호기 터빈 등은 2021년 4월 대형 플랑크톤인 ‘살파’라는 해양생물이 대량으로 원전 취수구로 유입하면서 정지했다. 원전 안으로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통로인 취수구가 막히면 원전 발전계통의 열을 식히는 냉각수가 유입이 안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계속 해수 온도가 오르면 살파와 같은 해파리 형태의 생물이 늘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봄 동해안 산불로 한울원전 앞까지 불이 번지자, 소방당국은 바닷물까지 퍼 올려 겨우 불을 껐다.
윤석열 정부는 올 하반기까지 법 정비에 나서 대형 원전 확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탄소배출 감축에 속도를 내야 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급도 불안한 시대이다. 이 때문에 이미 건설된 원전을 안전하게 활용해서 현재의 편리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로서 불가피한 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이상기후 앞 원전이 절대 안전인지 의구심이 드는 마음까지는 덮을 수 없다. 이전 정부와의 정쟁 구도만을 고려해 원전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폭염이 이어지는 올여름, 원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참고로 이 글 제목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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