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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국민’ 대신 ‘시민’에 주목할 때

등록 2022-06-15 19:28수정 2022-06-16 02:37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서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외국인 대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서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외국인 대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지난 5월 말에 오랜만에 지나가게 된 청와대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1982년 여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팔판동 근처를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있으면 누군가 나타나 사진을 찍지 말라고 경고하곤 했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의 변화가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청와대 입구에서 챙긴 홍보물 표지에는 “청와대, 국민 품으로”라고 쓰여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정의에는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국가의 구성원’과 ‘국적을 가진 사람’의 차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에는 외국인들을 비롯해 다양한 이유와 신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포함되는데, “국적을 가진 사람”에는 자연스럽게 외국인은 제외된다.

‘시민’은 어떨까. 같은 사전에 의하면 ‘시민’은 두가지 정의가 있다. 하나는 “시(市)에 사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의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이다. 후자는 국민과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둘 다 국가 구성원에 관한 정의지만 국민에 비해 시민은 국적을 논하지 않고 대신 사회 구성원의 법적 권리와 사회적 책임에 관해 규정한다. 다시 말해 행위의 주체성을 포함하는 시민에 비해 국민은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인다. 또한 ‘자유민’인 시민은 행위의 주체성을 발휘하여 자신들이 속한 국가를 감시하거나 커다란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정의를 좀 더 살피자면 ‘시민’은 단기방문자를 제외한 모든 사회 구성원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여러 형태로 살고 있는 외국인도 여기에 포함한다. 이 때문에 국가 간 이동이 잦은 21세기에는 국민보다는 시민이 훨씬 더 적합한 표현으로 보인다.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마다 이민을 오는 이들과 떠나는 이들이 상시적으로 존재한다. 선진국은 떠나는 이들보다 들어오는 이들이 많지만, 빈곤과 전쟁으로 인해 들어오는 이들보다 떠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나라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일랜드처럼 떠나는 이들이 더 많았다가 최근에 들어오는 이들이 훨씬 더 늘어난 곳도 있고, 이와 반대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전통적으로 이민자가 많았던 나라가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떠나려는 이들이 더 늘어난 곳도 있다.

한국은 어느 쪽일까. 오랫동안 이민을 떠나려는 이들이 들어오려는 이들에 비해 많았지만, 1990년대 이후 경제와 사회 발전으로 인해 들어오려는 이들이 훨씬 많아졌고, 이런 추세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와 달리 사회적 인식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늘어난 것은 누구나 느끼지만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이는 곧 정책에서도 드러나는데 한국에 사는 외국인 구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외국인 분류 항목으로는 ‘외국 국적 동포’,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주민’, ‘외국인 유학생’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각각의 항목에 따라 사회적 인식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전체 비중을 실감하는 데 취약하다. 그렇다 보니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사는 다양한 형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오려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아진 것도 이미 오래됐으니 현실에 맞게 외국인을 대하는 사회 전반의 기본 인식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다. 외국인들은 대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오긴 했으나, 한국 역시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외국인들과의 인적 교류로 얻는 이익이 매우 많다. 다시 말해 국가와 이민자는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이므로 이민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증가세는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을 향한 인식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외국인 혐오에 대응하는 것이다. 외국인 혐오는 개인 간 문제에서 나아가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구시대적 행위다. 이른바 강대국들마다 외국인 혐오 현상이 두드러지는 추세인데, 이럴 때일수록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태도 변화의 첫 시작점에 국민이 아닌 시민이 있다. 한국에 사는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국적을 논함으로써 외국인을 제외시키는 ‘국민’보다 자유민으로서 열린 태도와 행위의 주체자로서 모든 대상을 포함하는 ‘시민’의 사용을 더욱더 늘려나갈 것을 제안한다. 국가 이미지 차별화 전략으로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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