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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빗물의 경제학

등록 2022-06-12 19:21수정 2022-06-13 02:38

서울 중구 만리재로의 한 빗물저금통. 최우리 기자
서울 중구 만리재로의 한 빗물저금통. 최우리 기자

최우리 | 경제산업부 기자

나무도 목이 마른 초여름을 보내고 있다. 요즘 서울 마포구 일대 가로수에는 25ℓ짜리 수목용 물주머니가 달려 있다. 행정안전부는 9일 내놓은 6월 가뭄 예·경보를 통해 아직 전국 농업용 저수지의 저수율이 평균 110%를 넘는다고 안심하라고 하지만, 이미 지방자치단체마다 가뭄 대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 미국 국립기상국은 이번 주말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등 미국 남서부 일부 지역에 47도 넘는 무더위가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한반도 역시 올여름 폭염에 시달릴까 불안하다. 유달리 가물었던 봄철을 마무리하고 장마가 어서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물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빗물은 경제다. 8일 폐막한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정부가 150만달러를 투자한 인공강우 실험을 다룬 영화 <비 만들기 프로젝트>가 상영됐다. 1978년 발효된 환경수정협약(ENMOD)으로 76개 회원국은 인위적으로 기상조건을 변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조약에 아랍에미리트는 참여하지 않고 있기에 이 실험이 가능했다. 홍수에 대비하고 식수를 분배하기 위해 물을 통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이었다. 영화는 기술개발로 이제는 하늘의 순리를 통제하려는 인간의 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올해 1월 부산대학교 대기환경과학과 서경환 교수 등은 ‘장마철 첫 강수의 경제적 가치’ 논문에서 첫 강수의 경제적 가치가 500억~1500억원이라고 분석했다. 대기 개선, 수자원 확보, 가뭄 경감, 산불 예방 순으로 경제적 효과가 컸다.

최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빗물저금통’이 내 눈에 들어온 것도 날이 가물어서, 빗물이 귀해서였다. 골목길 한쪽에는 동네 주민들이 조성한 꽃밭이 있다. 빗물저금통은 그 옆에 나무통의 모양을 하고 얌전히 서 있었고 호스가 달려 있었다. 빗물저장시설 사업을 하는 ‘물과미래’ 신정훈 대표 설명을 들어보니, 다양한 업체가 빗물저장시설을 개발해 판매 중인데 빗물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개인·단체 등에서 정수 처리해 모아두었던 빗물로 음용수를 제외한 조경수, 청소수, 중수도(화장실 변기 등에서 사용하는 물)로 이용하고 있었다.

상수도업계에 종사하면서 빗물의 경제적 가치를 알게 돼 15년 전 이 회사를 창업하고 빗물 관련 특허도 신청했다는 신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보는 과학 교과서에도 빗물 이용의 의미 등이 소개돼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사람들이 물어봐요. 비도 자주 안 오는데 왜 이 사업을 하냐고요. 그런데 비가 안 오니까 더 해야지요. 한국은 비가 꾸준히 오지 않으니 물이 부족할 때도 있고, 요즘은 기후변화 영향으로 가뭄과 홍수 피해가 커지는 추세니 대체 수자원으로서 빗물을 더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2010년 ‘물의 재이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전후로 서울·대전·대구 등에서는 조례를 만들어 이런 빗물저장시설 설치 지원 사업을 하고 있었다. 2020년 환경부 생활하수과가 집계한 전국 통계를 보면, 일정 기준 이상 면적 공공청사나 학교, 골프장 등을 포함해 2936개 빗물이용시설이 설치돼 있다.

9일 서울 마포구의 가로수에 수목물주머니가 달려 있다. 최우리 기자
9일 서울 마포구의 가로수에 수목물주머니가 달려 있다. 최우리 기자

뜨거운 여름날, 사무실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지친 퇴근길에도 곧장 집으로 가지 못하고 도심 속 작은 나의 텃밭에 들러 물을 주고 가야 했다. 소나기 덕분에 나의 시간이 ‘저장’될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비켜나 빗물의 경제학에 대한 자율 학습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역시 자연은 돈이 된다는 것이었다. 자연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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