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작은, 하찮은

등록 2022-05-29 18:07수정 2022-05-30 02:0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접미사는 단어에 뿌리는 향신료다. ‘돌멩이’에 쓰인 ‘-멩이’처럼 어떤 말(어근) 뒤에 들러붙어 미세한 의미를 얹는다. 후춧가루처럼 애초의 의미에 풍미를 더하며 말맛을 살아나게 한다.

그중에는 대상이 보통의 크기보다 작다는 걸 표시하는 게 있다. 축소접미사라 이르는데, 이탈리아어에 흔하다. ‘빌라’(villa)보다 작은 규모의 집을 ‘빌레타’(villetta)라 하거나, 교향곡인 ‘신포니아’(sinfonia)와 달리 현악기 몇개로만 연주하는 소규모 교향곡을 ‘신포니에타’(sinfonietta)라 하는 식이다.

한국어에는 새끼를 뜻하는 단어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 병아리’에 쓰인 ‘-아지’, ‘-아리’ 같은 접미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작은 것’은 작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은 것은 귀엽고 친근하기도 하지만, 미숙하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은 건 쉽게 낮잡아 보인다.

‘-아지’는 동물 아닌 대상에도 쓰이는데, ‘꼬라지’(꼴), ‘모가지’(목), ‘싸가지’(싹) 같은 말을 보면 대상을 속되게 일컫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리’가 들어간 ‘이파리(잎), 매가리(맥), 쪼가리(쪽)’에도 대상을 하찮게 여기는 게 묻어 있다. 축소접미사라 하긴 어렵지만, ‘무르팍(무릎), 끄덩이(끝), 끄트머리(끝), 배때기, 사타구니(샅), 코빼기’ 같은 말에 쓰인 접미사에도 대상을 속되게 부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향신료가 음식의 풍미를 좌우하듯, 접미사엔 감정이 묻어 있다. 접미사가 있는 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뭐든 작은 게 결정적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헌법재판관 흔들기, 최종 목적이 뭔가 [2월3일 뉴스뷰리핑] 1.

헌법재판관 흔들기, 최종 목적이 뭔가 [2월3일 뉴스뷰리핑]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2.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고용도 인연인데, 어떻게 인연을 이렇게 잘라요?” [6411의 목소리] 3.

“고용도 인연인데, 어떻게 인연을 이렇게 잘라요?” [6411의 목소리]

헌법이 구타당하는 시대 [세상읽기] 4.

헌법이 구타당하는 시대 [세상읽기]

우리는 정말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나 [강준만 칼럼] 5.

우리는 정말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나 [강준만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