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딸애가 배시시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한달이 다 되도록 이름을 못 지었더랬다. 출생신고는 ‘태어났음’을 신고하는 게 아니라, ‘이름’을 신고하는 행위렷다.
이름은 대상에 대한 이해의 표현이다. ‘알버섯, 붉은완두, 검정콩, 몽당솔, 누운잣나무’ 따위는 식물의 생김새나 색깔 같은 특성을 포착하여 지은 이름이다. 사람이나 동물, 사물에 빗대어 짓기도 하는데, ‘할미꽃, 애기똥풀, 개구리참외, 쥐똥나무, 국수맨드라미, 접시꽃’ 같은 이름이 그렇다.
당신의 이름처럼, 이름은 대상에 대한 희망의 표명이기도 하다. 성명학에 따르면, 이름은 존재의 운명을 좌우한다. 당신도 가끔 본인 이름을 곱씹으며 거기에 담긴 희망(바람)대로 살고 있는지 가늠해보곤 할 테지?(‘바다를 진압한다’는 이름 뜻과 ‘수영을 못 하는’ 현실은 나를 이중인격자로 만들었다오.)
이름은 대상에 대해 뿌옇게 퍼져나가는 상상을 잡아 붙들어 매고 실체화한다. 닻이 바닥에 박혀 배를 고정시키듯, 그림이나 사진에 붙은 제목은 이미지의 의미를 고정시키는 ‘정박 기능’을 한다(롤랑 바르트). 갑옷과 투구를 쓴 병사가 벌거벗은 여성과 아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피카소의 그림을 감상하다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제목을 보게 되면 감흥이 남달라져 다시 들여다보게 되듯이.
‘청와대’란 이름은 건물 지붕이 파래서 지은 이름이지만,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마는, 용산으로 옮아가는 대통령 집무실 이름은 따로 생각해 두었겠지?(한달 안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5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