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동성길에 벚꽃과 유채꽃이 활짝 피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연합뉴스
최우리 | 기후변화팀장
“나만 빼고 다 사랑에 빠져 봄노래를 부르고/ 꽃잎이 피어나 눈앞에 살랑거려도/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 버릴/ 오오 봄 사랑 벚꽃 말고”(아이유, ‘봄 사랑 벚꽃 말고’)
에스엔에스 피드에 봄꽃, 봄 풍경 사진이 가득하다. 헝가리의 한 연구진은 소셜네트워크에 사진을 올리는 빈도가 늘수록 세상과의 연결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나도 요즘 부쩍 에스엔에스 피드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좋아요’를 누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솔직히 다른 이야기가 듣고 싶다.
지난 2년 동안 기후·환경 뉴스를 쓰는 팀에서 일하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반가웠다. 에너지 전환 과제를 받아든 전세계가 답을 찾아가는 길을 함께 고민한다는 점 자체로 보람됐다. 그러나 대선 기간을 거치며 기후의제는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에너지 전환 과제가 복잡하기는 하다.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자립이 중요한 과제인 미래에는 중앙집중형 에너지 체계를 분산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그러려면 에너지 생산과 소비, 운송 전 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경쟁으로만 매몰됐다. 한 언론계 인사는 “대선 과정에서 젠더와 장애 이슈는 ‘대립’이라도 했지만 기후는 관심도 없어졌다”며 뼈 때리는 진단을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한국에서 기후변화는 날씨가 춥고 덥고 이상하다는 말밖에 안 한다. 굳이 따지면 ‘초급’ 수준의 논의만 수년째 반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 관련 기사의 확장이 어려운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환경 기사를 가리켜 과거부터 환경 기자들은 ‘1판용 기사’라고 불렀다. 다음날 아침까지 전국 가정으로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서 신문사들은 마감시간을 지역별로 다르게 두고 있다. 1판은 그날 가장 빨리 마감하는 지면으로, 남쪽으로 배달된다. 자조적인 이 용어는, 밤사이 다른 기사들에 밀려 환경 기사가 지면에서 빠진 적이 많아서다. 정치인 취재에 관심 있던 한 기자 선배는 6~7년 전 동물권 취재에 관심 있던 내게 진지하게 “경쟁자가 없어서 그런 기사를 쓰냐”고 지적했다. 이후 동물권 관련한 다양한 뉴스가 쏟아졌고 6~7년 동안 사회 인식도 달라졌으니 그도 이제는 그런 말을 쉽게 뱉지 못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듣고 싶은 이들이 느끼는 올해 봄은 꽃길이 아니다. 여성을 향한 구조적 폭력이 없다 하고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가 출퇴근길의 불편함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상처받는 이들은 여성과 장애인뿐이 아니다. 차별과 혐오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다양한 목소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다. ‘여당 속 야당’ 역할을 하는 환경부는 새 정부도 가장 홀대하는 부처 중 하나란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처음에는 폐기물 쪽에만 관심을 두다가 비판이 이어지자 이명박 정부 시절의 기후·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을 그제야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책은 실종되고 인물만 바뀌었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 폭력적 방식이었다며 지난 5년을 지우겠다는 새 정부의 탈탈원전 정책 역시 사회적 갈등이 똑같이 예고돼 있다.
혼자 훔쳐보던 봄꽃을 사람들과 함께 보다 보니 낯설었다. 하지만 자연이 하지 못하는 위로를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봄은 이제야 시작인데 벌써 희망이 꺾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아우성을 살피는 사회와 언론이면 좋겠다. 언론도 정치권이 말하지 않는 다양한 주제도 다루길, 온라인 조회수가 많지 않더라도 짚고 기록할 수 있는 기사라면 꼭 쓰길, 아직 언론의 역할을 믿고 싶은 스스로에게 말 걸어본다. 누구나 말하는 봄, 사랑, 벚꽃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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