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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영전 칼럼] 3P에서 4P로 가야 한다

등록 2022-04-12 14:35수정 2022-04-13 02:39

지금부터라도 공공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는 동시에 엄청난 지원을 받으면서도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못한 비영리법인에 공적 거버넌스를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는 ‘영리’와 ‘민간’이란 이유가 인류적 재난 상황에서 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이유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9월2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19 음압격리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코로나19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지난해 9월2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19 음압격리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코로나19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신영전ㅣ한양대 의대 교수

지난달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평소 지병도 없으셨던 두분이 함께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코로나 의심환자라고 받아주지 않는 의료기관들,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확진이 되어야 병원을 배정받을 수 있어 며칠 늦어진 치료, 환자 가족이 구하러 뛰어다녀야 했던 산소통, 병원을 지정받은 후 두분만 응급차로 떠나보낸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전화 연락도 잘 안 되는 요양병원에서 치료는 제대로 받다 돌아가셨을까 하며 친구는 눈시울을 붉혔다.

왜 이런 일들이 생겼을까? 이 비극의 근저에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은 코로나로 아픈데도 제때에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한 것이다. 중환자 치료 병상이 한도를 넘지 않았다는 건 ‘윗분’에 올리는 자료나 보도자료에만 있는 말이다.

유행 초기, 코로나19 검사를 14번이나 받고, 병원을 전전하다 죽은 고 정유엽군의 비극이 있었음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 비극의 중심에 우리나라 병원 수의 94.3%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이 있다. 왜 전체 병원 수의 5.7%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이 마른걸레 쥐어짜듯 고통 속에서 70%의 코로나 환자를 전담해야 했을까? 소위 ‘빅5’ 대형병원은 무엇을 했는가? 모든 병원 병상의 10%를 감염 병상으로 의무화하는 조치가 있었다면, 많은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왜 그러지 못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공공병상 비율이 70.3%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10%도 안 되는, 민간 중심 체계를 가지게 된 것은 역대 정권이 공공병원 확충 대신 민간병원 지원 정책을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선 돈도 적게 들고 책임 회피에도 좋아서이다. 공공 부문의 강화를 주장하면 ‘체제 불안 세력’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러면 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은 코로나 환자의 입원 치료를 거부하고 정부는 이것을 방조했을까? 이미 입원해 있는 환자들 때문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허가 병상의 100분의 1 이상의 예비 병상을 의무화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그 비율을 10% 정도로 높이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될 수 없다. 무료로 하라는 것도 아니다. 감염 치료 시설을 갖출 여력은 소형 요양병원보다 대형병원이 더 크다.

민간병원에 그것을 강제할 수 있냐는 것도 틀렸다. 우리나라 민간병원의 급격한 성장은 대규모 시중은행 자금 지원과 세금 특혜에 의해 이루어졌다. 1991년부터 6년간만 약 6000억원을 약 4만 민간 병상의 신증설에 투여했다. 현재 민간 종합병원의 약 77%가 비영리법인이고 소득세, 상속세, 양도세, 재산세 등 거의 10가지 세금을 면제 또는 감면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빅5’라는 병원들은 사회복지·학교법인이라는 이유로 가장 큰 세금 혜택을 받고 있다. 이런 병원들이 국가적 재난 속에서 코로나 환자를 안 보고, 정부는 이를 방조했으며, 환자들은 죽어갔다.

전망이 비관적인 것이 더 문제다. 작금의 소강 국면은 정책 효과라기보다는 낮은 치명률의 코로나 변이 덕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올가을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일어날 것이라 경고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그나마 검토되던 공공병원의 대규모 확충이나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의 신설이 물 건너갔다 말하는 이들이 많다. 새 정부는 공공병원의 확대보다 민간병원을 활용하여 공공 기능을 확보하겠다고 한다. 이것에 ‘3P’(public-private partnership, 공공민간협력)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지만, 3P는 대부분 민간부문의 이익을 중심에 둔 정부와 민간의 결탁 모형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공공보건의 주체에 민간을 포함했다. 민간 의료기관의 공공성 강화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공공의료기관 확충에 들어갈 예산을 민간 의료기관으로 돌리는 의료민영화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3P에는 ‘국민’이 없다. 그래서 최근 일부 학자들은 3P에 ‘국민’(people)을 넣어 ‘4P’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스웨덴의 사회정책학자 스벤 호르트 교수 역시 북유럽 복지국가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이 4P를 꼽기도 했다.

팬데믹의 시작이 영리를 앞세운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 때문이라면, 그 대응 체계의 부실함 역시 영리 기반의 의료 체계인 셈이다. 지금부터라도 공공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는 동시에 엄청난 지원을 받으면서도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못한 비영리법인에 공적 거버넌스를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는 ‘영리’와 ‘민간’이란 이유가 인류적 재난 상황에서 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이유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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