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의 사사로운 사전] 원도 | 작가·경찰관
‘문구’의 사전적 정의는 대표적으로 세가지가 있다. 글의 구절. 모르는 것을 알려고 물음. 학용품과 사무용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이 글은 각각의 문구에 대한 짧은 기억 모음이다.
집 앞에 치킨집이 생겼더라.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 엄마가 말했다. 치킨? 무슨 치킨? 새로 생긴 치킨집을 본 적 없어 상호를 물으니, 엄마는 케이요 치킨이라 답했다. 내가 아무리 비수도권에 거주한다지만 케이요 치킨이라는 브랜드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신생 브랜드인가. 다음날 커피를 사러 나선 길에 케이요 치킨의 진짜 이름은 교촌 치킨이라는 것을 알았다. 간판에 적힌 ‘kyochon’을 케이요라 읽으셨던 거다. 정식 교육 과정에서 영어를 배워본 적 없고 사교육도 받은 적 없는 엄마가 읽을 수 있는 문구(文句)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 근래의 엄마는 티브이(TV) 앞에서 질문이 많아졌다. 메이드가 무슨 뜻이니. 컬래버가 뭐야. 드라마 제목이 영어인 것 같은데 무슨 뜻이야? 그냥 괜찮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괜춘’이라 쓰는 이유는 뭐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문구(問求)들. 엄마 좀 도와줘. 나처럼 나이 들고 무식한 사람은 설명해주는 딸내미 없으면 이제 테레비도 못 보겠다. 글자 크기가 너무 커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스마트폰을 붙잡고 엄마의 손가락이 갈 곳을 잃었다. 확인 버튼은 왜 항상 엄마의 눈에만 보이지 않을까. 백석 시인의 시구처럼, 엄마의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태어난 지 1400일을 넘기고 이제야 말문이 트인 조카가 집에 놀러올 때면 우리 집 공기 속 물음표 농도가 급격히 짙어진다. 이거 머아? 저건 머아? 이모, 그게 머아? 확실한 발음을 구사하지 못하는 미숙한 혓바닥으로 쏟아내는 문구(問求)들. 손가락은 어찌나 꼿꼿이 목표물을 지목하는지 보고 있자니 정말 귀여운 노릇이다. 응, 이건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이야. 이건 식물을 키우는 화분이야. 조카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티브이 화면을 가리키며 입을 크게 벌리고 묻는다. 이게 머아! 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나를 향해 쪼르르 달려와 지치지 않고 재차 묻는다. 이게 머아? 응, 이건 네가 좋아하는 책이야. 내 나이쯤 되면 책 속에 그림보단 글자가 더 많아. 문구(文句)와 문구(問求)를 통해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의 낯이 봄의 꽃밭처럼 다채롭다.
문구(文具)점에 가면 방문한 적도 없는 관에 갇힌 기분이 든다. 적어도 여기로 피신한 동안에는 나를 괴롭힐 요소가 없다. 나가서 그럭저럭 삶을 더 이어나가고 싶지만 굳이 그러고 싶은 의욕은 기화되는 기묘한 곳. 심연에 금이 갈 때면 늘 문구점을 찾던 이유였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미국 뉴욕으로 장장 14시간에 걸쳐 날아갔을 때도, 가장 먼저 문구점을 찾았다. 연필이 등급별로, 브랜드별로, 혹은 나무 색상별로 유리병에 가지런히 꽂혀 진열되어 있던 어느 벽면 수납장. 소나기가 내려 젖어버린 공원. 비를 맞으며 캔버스를 그림으로 채우던 화가.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영어 문구(文句)도 읽을 줄 모르고 영어로 문구(問求)하는 법도 모르는 동양인. 연필로 쓸 수도 캔버스로 그릴 수도 없는 그 시절 나의 낯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다.
오랜만에 문구(文具)점에 들렀다. 일할 때 쓸 볼펜과 수첩을 사기 위해서다. 나에게 여러번 문구(問求)하여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깨친 엄마는 이미 겨울이 다 가버린 지금 나에게 귀덮개가 달린 털모자를 선물하셨다. 새싹처럼 뾰족 나온 입으로 문구(問求)하던 조카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다행히 무증상으로 격리 기간을 보냈다. 나는 문구(文具)점에서 산 볼펜으로 변사 현장에서 유족에게 필요한 사항을 문구(問求)한다. 변사자가 평소 앓던 지병이 있었는지. 복용하던 약이 있는지. 최근 식사는 잘 했는지. 볼펜의 잉크가 유족의 눈물처럼 똑 떨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