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파연합회, 전국양파생산자협회 등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전국 양파 생산자 대회를 열어 양파 가격 보장과 농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우리 | 기후변화팀장
“정말 단비가 맞아요. 지난겨울 하도 가물어서 생장이 멈춰 있던 상황이라….” 전남 해남에서 20년째 마늘농사를 짓고 있는 이무진씨에게 근황을 물었다. 그는 최근 내린 봄비에 매우 고마워했다.
겨울은 당연히 사계절 중 가장 건조한 계절이지만, 이렇게 가물었던 적은 드물었다. 지난 3개월 동안 평년(1991~2020년) 같은 기간 강수량의 15%인 13.3㎜의 비가 내렸다. 기상청이 집계를 시작한 1973년 이후 매년 12월1일부터 다음해 2월28일까지의 강수량을 1973~1990년, 1991~2000년, 2001~2010년, 2011~2020년 단위로 끊어보면 92.75㎜→86.15㎜→90.64㎜→90.06㎜로 나타났다. 현대적 의미의 강수량 관측 역사가 40여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세를 단정하기는 섣부르지만 겨울철 강수량의 감소가 기후변화의 특징인 봄철 건조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씨는 농작물도 겨울잠을 자고 봄에 깨어난다고 설명했다. 마늘과 양파, 밀 등은 생장을 잠시 멈추고 추운 겨울 동안 에너지를 충전한다. 슬슬 언 땅이 녹는 정월대보름 무렵부터 다시 생장을 시작하는데 올해는 그 시기가 너무 가물었다. 그나마 최근 내린 비로 생장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거름을 뿌려도 마늘이 영양분을 땅속에서 흡수를 못하고 있더라고요. 비가 내린 뒤로는 거름을 흡수해서 색이 거름색으로 변했어요. 5월 수확 때까지 지켜보면 가뭄의 영향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운 봄비가 이제라도 목마른 농작물에 위로를 주었다지만, 꿀벌은 여전히 잔인한 봄을 보내고 있다. 아침 기온이 15도 안팎으로 오르는 이달 말부터 벌들은 활동한다. 그런데 올해는 월동한 벌 무리가 통째로 없어졌다는 신고가 전국적으로 접수됐다. 포근했던 지난해 11~12월에 겨울잠을 자던 벌들이 밖으로 나온 뒤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2006년 미국에서처럼 벌의 면역체계가 붕괴되어 벌들이 사라져버렸다는 해석도 있다. 위기 상황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자연의 묵시론적 경고가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잔인한 봄이 향하는 방향은 불안한 미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수급 조절이 어려워지고 유가가 역대 최고 가격으로 급등하면서 유럽에 ‘에너지 안보’ 불안을 드리우고 있다. 한 기후환경전문가는 “한국은 현재 에너지 확보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 기후위기 시대 필연적으로 닥칠 에너지 안보 문제를 유럽만큼 실감하지는 못하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가시화된 에너지 안보와 함께 기후위기의 종착점이 ‘식량 안보’일 것이라는 예측은 오래되었다. 비옥한 ‘흑토’가 있어 세계적인 농산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는 곡물 생산이 어려워지고, 인근 항구들의 폐쇄로 수출길이 막힐 수 있어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후위기로 농수산업이 이곳저곳에서 붕괴할 경우에도 각국 정부가 유지하고자 하는 평화와 안정이 도미노처럼 순차적으로 붕괴될 수 있다.
일단 이씨의 원망이 향하는 방향은 하늘보다는 정부였다. 결국 마늘값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라는 설명이었다. “정부는 수급 안정이 최우선이라, 수확 이후 수입 농산물량이나 저장 농산물량을 조절해 농산물 수급량이나 가격을 통제한다. 이 때문에 마늘의 소비자가격이 오른다 해도 저장하고 유통하는 사람들만 돈 버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로 양파 소비량이 줄고 저장 양파가 많이 풀리면서 봄에 수확하는 조생 양파 가격이 폭락해 시위에 나선 상황을 도시민들은 잘 모른다면서.
농어민들이 땅과 바다를 떠날 경우 도시민들도 생존 경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잔인한 봄이 던진 복잡한 질문이 마음에 남았다. 기후위기, 에너지 안보 시대 도시민들 역시 식량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답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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