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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부동층이 부럽다

등록 2022-03-06 17:59수정 2022-03-06 18:52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확신이 안 선다. 사무실 온풍기 불을 껐는지, 안 껐는지. 이미 버스는 탔고, 돌아갔다 오면 약속 시간엔 늦는다. 끈 거 같기도 하다. 종일 틀어놔도 별 탈 없었고. 하지만 ‘만에 하나’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버스에서 내린다. 돌아가지 않으면 내내 걱정일 테고, 갔는데 불이 꺼져 있으면 허탈하겠지. 되돌아간 보람이라도 있으려면, 차라리 불이 켜져 있기를!

선거는 사람들 마음에 심리적 확고함이라는 굳은살이 자라게 한다. 일종의 최면 상태이다. 평소보다 접하는 정보는 더 편향적이고, 입에서 나오는 말도 확신에 차 있다. 나는 언제나 정의와 진리의 편. 무너진 정의를 세우고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면 ‘그’가 되어야 하고, ‘그놈’은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 지지 후보와 정서적 일체감과 사상적 동질감을 느낀다. 확고함은 간절함과 친구 사이. 고약하게도 간절할수록 불안감도 커진다. 혹시 ‘그놈’이 당선되면 세상은 엉망진창, 뒷걸음질하겠지.

투표를 하면서 ‘안 되면 어떡하지?’보다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라는 말을 되뇐다. 우리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되뇌다 보면 정치를 둘러싼 말이 쪽수나 당락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게 만든다. 어느 누구도 이 세계를 명징하게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 나는 정의의 편이 아닐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부동층’이 부럽다. 흔들리는, 한곳에 정박하지 않는,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오늘과 내일의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치는 생활현실에 더 가까워지고, 사회는 더 두툼해지리라. 분하게도 나는 부동층이 되기엔 이미 머리가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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