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사전] 원도 | 작가·경찰관
‘울음’은 사전에서 우는 일, 또는 그런 소리라는 뜻이라 정의한다. 우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이므로 당사자가 슬퍼서 울거나, 혹은 기뻐서 울거나, 또는 재채기를 하다 목이 메어 눈물이 찔끔 고여도 모두 같은 울음이다. 슬프거나 아파서 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세상 사는 일이 참 쉽지 않다. 너무 진부한 말이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고전과도 같은 표현이기도 하다.
경찰관만큼 타인의 울음을 직접적으로 겪는 직업이 어디 있으랴 싶다가도 대학병원 응급실 혹은 장례식장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생각이 참 섣부르고도 오만한 결론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장소에서의 울음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학교에서도, 회사 건물 내부 화장실에서도, 인파가 몰리는 지하철에서도 울음은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이웃이다. 왕왕 울면서 태어났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들은 지금도 울면서 자란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제목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 어느 사건이 180도 달라지길 바라며 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우는 것뿐이라서, 단지 그 이유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리라. 가로등을 붙잡고, 혹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삼남매의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날 때부터 동반한 울음을 한달이 넘도록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학교생활을 시작한 첫째 뒷바라지하랴,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둘째 병원 데리고 다니랴, 지천의 모든 울음을 끌어 쓰는 셋째까지 돌보랴 한계 상황에 봉착한 엄마는, 근심을 가진 부모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어느 할머니를 찾아갔다. 고민은 딱 하나. 셋째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엄마의 간절함을 듣던 할머니는 담담히 해법을 내놓았다. 아이에게 아주 큰 외투를 입히고 모자까지 야무지게 씌우라고. 그 상태로 아비가 아이를 업은 채 기찻길을 걸어가면 더 이상 울지 않을 거라 했다. 기댈 구석이 없었던 부모님은 할머니의 말을 따랐다. 아빠는 외투로 포장되다시피 한 나를 업고 한밤중에 십리 기찻길을 건넜다. 그 뒤로 내가 울고 보채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강남역을 빠져나와 거리를 걷는데 문득, 이 도시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늘 하는 생각이므로 ‘문득’ 들었다는 표현이 적확하진 않지만, 어쨌거나. 횡단보도를 바쁘게 건너는 사람에게 어깨를 치임과 동시에 이 많은 사람 중에 나의 하루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현실이 퍽 고독스러웠다. 모르는 타인에게 치인 어깨는 아프진 않았지만 쓸쓸해서 괜히 어루만졌다. 어느 도시보다 가장 정신없는 현재를 보내는 서울의 거리를 전전하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구르고 굴러 결국 서울까지 도달하게 된 나의 인생은 어떤 모양일까. 반듯하게 오진 못했으니 동그라미는 아닌가 보다, 어깨를 만지며 생각한다.
그러다 불현듯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과학적인 구석이라곤 하나 없는, 어느 할머니가 보살펴주셔서 상태가 나아진 건지 그저 자연히 울음이 멎을 순간인데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전. 전설의 효과는 여기서 끝이었나 보다. 과거에 강제로 막힌 울음이 횡단보도 끝에서 분수처럼 터져버렸다. 먼 고향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자랄 대로 자란 저의 몸을 꽁꽁 덮어줄 외투 같은 건 이제 백화점에 가도 살 수 없습니다. 장성한 저를 업고 십리 기찻길을 걸어줄 당신의 젊은 신체도 더는 없습니다. 저의 울음은 어떻게 해야 그칠 수 있을까요.
사고에 휘말려 사망한 고인의 유족이 내는 울음에 나의 울음은 들어갈 자리도 없던 수많은 현장. 집값 상승 요인 대신 누군가의 투신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애달픈 한강. 태재 시인의 시구처럼, 서울은 서서 울어서 서울인갑다. 이사라 시인의 시구처럼, 젊은 그가 간 뒤로 알겠다. 사람이 사는 일이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