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올해부터 정부 문서에서 나라 명칭을 영어(Turkey)가 아닌 터키어(Türkiye, 튀르키예)로 표기하라고 지시했다. 앙카라/로이터 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지난 연말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2022년부터 정부 문서에서 나라 명칭을 터키어로 표기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터키 정부는 공식 문서에서 터키를 ‘Türkiye’(튀르키예)로 표기하기 시작했고, 점차 유엔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앞으로는 터키 대신에 ‘튀르키예’로, 영어로는 ‘Turkey’(터키) 대신에 Türkiye로 표기하게 될 것이다.
표기 변화의 이유는 ‘터키의 문화와 문명 그리고 가치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로벌 영어’의 영향력으로 이미 수많은 외국인들이 영어식 명칭인 Turkey를 사용하고 있고, 한국만 해도 영어식 명칭을 한글로 표기해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국의 명칭을 터키어로 바꾸는 것은 ‘탈영어’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국가명만 놓고 보자면 터키가 처음은 아니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고,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는 1986년 영어식 국가명 ‘Ivory Coast’(아이보리코스트)를 프랑스어 ‘Cote d’Ivoire’(코트디부아르)로 변경했다. 옛 포르투갈 식민지로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는, 아프리카 본토에서 떨어진 섬나라 카보베르데 역시 2013년 국가명을 영어식 ‘Cape Verde’(케이프버드)에서 포르투갈어 ‘Cabo Verde’(카보베르데)로 바꿨다. 두 나라 모두 새로운 명칭을 유엔의 공식 표기로 등록했다. 옛 식민지 지배자의 언어로 자국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 얼핏 모순처럼 보이고, 터키와는 정반대지만 ‘글로벌 영어’의 언어적 표준화 성격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그 커다란 물결 속에서 어떻게든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표기 변화는 국가 이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인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 콜카타는 오랫동안 영어식 ‘Calcutta’(캘커타)를 썼지만, 2001년 지역어인 벵골어 발음을 잘 반영하는 ‘Kolkata’(콜카타)로 변경했다. 역시 ‘탈영어’의 의도도 있지만, 지역 언어와 문화가 다양한 인도에서 벵골 지역어와 문화의 자부심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읽힌다.
이미 한국에서는 코트디부아르, 카보베르데, 콜카타의 새로운 명칭을 존중해왔으니 터키를 튀르키예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표기의 원칙만 놓고 보자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의 국가명을 표기할 때 영어 명칭을 그대로 한글로 바꿔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예를 들면 멕시코는 스페인어 발음인 ‘메히코’ 대신 영어 발음 멕시코로 읽고 쓴다. 이 나라의 수도 역시 스페인어 발음은 시우다드 데 메히코(Ciudad de México)지만 영어식 멕시코시티로 표기한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다. 남미 국가인 아르헨티나, 중미 국가인 온두라스는 모두 스페인어 표기를 따른다. 유럽 국가라고 다르지 않다. 언어적 거리가 먼 핀란드는 원어로 하면 ‘수오미’인데 한국은 영어식으로 쓰고 있고, 에스파냐 역시 대부분 영어식 스페인으로 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관성을 위해서라면 역시 ‘탈영어’ 정책을 펴서 원어의 명칭과 발음을 존중하면 된다. 참고로 북한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외래어 한글 표기 원칙이 다른 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터키는 ‘뛰르끼예’로, 멕시코는 ‘메히꼬’로 표기한다. 또한 한국에서 한자어로 표기하는 명칭도 원어 그대로 쓴다. 예를 들어 독일은 ‘도이췰란드’로 쓴다. 한국에서 만약 이런 식으로 원칙을 정하고 적용하면 국가 명칭만이 아니라 다른 지명들도 원어명을 존중하여 표기하게 된다. 북한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생각해볼 지점은 더 있다. 바로 한국의 명칭이다. 한국에서 다른 나라를 어떻게 표기하느냐를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다른 나라에서 한국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터키식으로 가자면 한국은 코리아가 아니라 한국이라고 해야 한다. 로마자로는 ‘Korea’가 아니라 ‘Hanguk’이 된다. 영어로는 대한민국을 ‘Republic of Hanguk’으로 써야 한다. 이렇게 되면 연달아 복잡하고 번거로운 문제가 이어진다. 명칭은 그렇다 해도 다른 표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K-pop(케이팝)의 ‘K’를 ‘H’로 바꿔야 하나? 하지만 번거로움만 따지는 대신 국가의 명칭만이라도 ‘Hanguk’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 신선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가 되어가는 ‘탈영어’ 흐름에도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