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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패엔 계절이 없다

등록 2022-01-20 18:00수정 2022-01-21 02:31

[사사로운 사전] 원도 | 작가·경찰관

과학수사대로 발령받아 가장 처음 출동한 사건은 부패 변사 현장이었다. 변사 현장도 처음이었고 더욱이 부패한 시체는 처음 접했던 어느 9월의 현장 일지. 얇은 덴탈 마스크 하나로 부패의 냄새를 가리긴 애초에 불가능이었다. 팀장님의 지시 아래 정신없이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든 생각은 단 하나. 어떻게 사람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는가. 아무리 사망했어도, 부패했더라도. 불과 얼마 전까지 하나의 생명이 머물다 떠난 자리인데…. 고인의 신체를 만질 때의 촉감에서는 생명의 그림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삼형제가 함께 사는 집이었다. 얇은 벽 하나로 방이 나뉜 평범한 집. 동생이 며칠 동안 식사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도, 가구라고는 티브이(TV) 하나뿐인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집. 방 안에서 사망한 동생이 심하게 부패한 상태로 역한 냄새를 풍기고 나서야 비로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발견한 집. 시신을 마당으로 옮긴 뒤 형에게 이것저것 물어봐도 모른다는 답변뿐이었다. 동생이 요즘 힘든 일을 겪고 있었나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요. 회사는 잘 나가던가요. 몰라요, 저.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장례식장 차량으로 동생이 운구되는 모습을 두 형이 멍하게 바라볼 때도 부패의 냄새는 집 안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신이 수습된 후 소란스럽던 마을 사람들이 미련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형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단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주름이 새겨질 세월 동안 삼형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떻게 사람 몸에서, 하나의 생명이 머물던 곳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는가 생각하다가도 문득 고개를 돌리면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런 말을 뱉을 수 있고 어떻게 사람이 다름 아닌 사람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비참한 광경을 일상의 풍경처럼 보게 되는 세상이다. 장례의 타이밍을 놓친 시체가 사망한 장소에서 부패하는 건 자연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죽음 이후 분해와 해체는 그저 하나의 단계에 불과할 뿐. 그러나 산 사람이 뱉는 말과 행동은 어떠한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건, 가진 자가 부족한 자를 착취하는 건 악의를 가득 담은 고의 아닌가. 더 부패한 쪽은 어느 쪽인가.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건 대체 어디인가. 우리는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답을 알 수 있다.

짐짓 무게를 잡으며 잘난 척 떠들었지만 나라고 어디 다를까. 한 사람이 구태여 내 곁을 지켜준다는 이유로, 오직 나를 상처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풀이를 곁의 사람에게 쏟아붓지 않았던가. 그저 그 사람이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이니까, 숭고한 호의와 사랑을 인질 삼아서. 악취를 맡아도 그저 고개 돌리며 내 갈 길 바쁘지 않았던가, 사는 게 여전히 팍팍하다는 이유로. 조금 더 자리가 잡히면, 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나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순간이 도래했을 때 행동해도 늦지 않는다는 알량한 자위로. 눈에 보이는 사랑을 믿지 않고 제대로 들은 적 없는 마음을 의심하며 실현되지 않을 상상에 겁먹어 동행하던 행복을 걷어차던 부패의 날이 잦다. 속이 썩어가는데도 사람 좋은 척 웃으며 괜찮다는 거짓의 말을 자주도 내뱉던 나의 입에서 부패의 구취가 가득하다. 좋은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마셔도, 피가 날 때까지 양치질을 해도 구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에게도 신선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를 수납했던 때가 있었는데. 한글 대신 마음을 모국어 삼아 편지지를 채워가던 때가. 눈에 보이는 걸 똑똑히 보았다고 답하던 때가. 냄새가 나면 난다고 악취의 근원을 정확히 짚었던 때가. 울던 이에게 어깨를 내주던 때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믿었던 때가. 매 순간 치열히 고민하며 성숙한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았던 때가. 아, 애석하게도 그 모든 때가 전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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