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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글래스고와 서울의 가을을 오가며

등록 2021-11-21 13:44수정 2021-11-22 02:33

5일 낮(현지시각) 글래스고 켈빈그로브 공원에서 출발한 기후파업 행진길. 글래스고의 아침은 밤새 내린 비로 젖어 있고는 했다. 최우리 기자
5일 낮(현지시각) 글래스고 켈빈그로브 공원에서 출발한 기후파업 행진길. 글래스고의 아침은 밤새 내린 비로 젖어 있고는 했다. 최우리 기자

최우리ㅣ기후변화팀장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취재하고 지난주에 돌아왔다. 26차 총회가 열린 글래스고는 영국 북쪽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다. 북위 55도로, 서울보다 꽤 북쪽이다. 글래스고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비와 바람이 잦다는 스코틀랜드 날씨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공항 입국장 문이 열리고 처음 들이마신 글래스고 밤공기는 한국 가을의 그것처럼 익숙했다. 9년 전부터 글래스고에 살고 있는 홍진현 글래스고대 교수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매우 포근해졌다. 기후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글래스고에 이주한 교민 송미소(30)씨도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여름이 일주일이면 끝나고 곧바로 쌀쌀한 가을이 찾아왔다. 이제는 따뜻한 여름이 길어져 살기가 나아졌는데, 이것도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영국은 영국이었다. 바다 내음을 머금은 공기는 수시로 비바람을 불러왔다. 글래스고에 머물던 2주 동안 갑자기 비바람이 불면, 들고 다니던 모직 코트를 우비처럼 둘러 입었다. 영국인들이 왜 모자 달린 점퍼를 많이 입고 다니는지, 우산을 드는 대신 우비를 입는지, 글래스고에서의 첫날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글래스고 시내가 편안해질 만큼 시간이 흐르자 이곳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날씨에 둔감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교민들은 영국인들이 분 단위의 날씨 예보 애플리케이션을 애용한다고 하면서도, 영국 기상청의 예보가 틀려도 화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 중에도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적응했다는 설명이었다. 날씨 예보가 틀리면 집중 공격을 받는 한국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박세영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 수치모델개발과 연구관은 “예보 시스템이 일찍이 갖춰진 영국의 예보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워낙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그럼에도 날씨 예보에 대한 민원 제기가 거의 없다”며 “태풍 같은 극단적 기상현상이 자주 없기 때문인지, 비바람 등이 시민들 생활에 미칠 영향을 소개하는 ‘영향 예보’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비와 바람이 잦은 영국에선 비가 오면 낙엽이 도로 하수구를 덮는 일이 있고, 바람으로 스쿨버스 등이 뒤집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향 예보가 발달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낯선 날씨는 삶을 새롭게 했다. 습한 날씨에 한국에서 사용하던 마스크팩은 거의 쓸 일이 없었다. 한국에서 자주 쓰지 않는 모자를 살까 몇번을 고민했다. 패션업계에서는 악천후에는 (자주 갈아 신어야 하기에) 양말이 잘 팔리고, 날씨가 맑을수록 화장품과 의류 판매량이 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글래스고에선 이달 중순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을이 끝났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모기들을 여전히 집에서 목격했다. 이상기후를 경험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해 혼자 작성 중인 ‘날씨일기’를 보면, 지난해 11월18일에도 모기 5마리를 잡은 뒤 포효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달 19일에도 집에서 6마리를 잡았다.

다음주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가 다시 기온이 오를 것이란 예보에 고개를 갸웃했다. 2001년 일본 의류브랜드 유니클로에서는 겨울이 늦게 시작할 거란 장기예보를 활용해 간절기 의류인 폴라플리스를 보름 만에 1500만장 판매했다고 한다. 날씨 정보는 경제다. 특정 날씨에 가장 어울리는 의상을 추천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국립수목원은 지난해 10년 동안의 조사 기록을 토대로 한반도 식물들의 단풍, 낙엽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글래스고와 서울을 오간 총 17일 동안 겨울의 늦은 시작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궁금해졌다. 기후변화는 늘 인간의 상상력과 적응력을 시험한다.

1일 오전(현지시각) 버밍엄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는 조 힌들리(왼쪽 여성)는 남편과 함께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행사가 열리는 스코티시 이벤트 캠퍼스(SEC) 옆 도로에서 펼침막을 들었다. 이날 아침도 밤새 내린 비로 땅이 젖어 있었다. 최우리 기자
1일 오전(현지시각) 버밍엄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는 조 힌들리(왼쪽 여성)는 남편과 함께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행사가 열리는 스코티시 이벤트 캠퍼스(SEC) 옆 도로에서 펼침막을 들었다. 이날 아침도 밤새 내린 비로 땅이 젖어 있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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