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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다’와 책임성

등록 2021-11-07 16:10수정 2021-11-08 02:33

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뭐든 반복을 하다 보면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궁리를 할 때도 있고, 적당히 넘길 요령을 찾을 때도 있다. 나도 매주 돌아오는 칼럼에서 가끔 느껴지는 무료함을 어떻게 달래볼까 잔머리를 굴리곤 하지. 그 무료함의 맨 앞줄에는 문장을 끝맺을 때마다 어김없이 쓰게 되는 ‘-다’가 있다. ‘-다’를 피하는 몇가지 잔꾀. 동사가 아닌 단어로 끝맺기, 도치법 쓰기, 괜히 질문하기(‘분명한가?’ ‘않겠나?’), 다른 종결어미 쓰기(‘얼마나 정겨운지’ ‘먹으란 뜻이렷다’).

‘-다’를 쓰면 문장이 중성화가 되어 시공과 상하귀천을 넘나드는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이야기일 것만 같다. 특히 글쓴이를 감출 수 있다. ‘단풍이 들었더라/들었다더라’라고 하면 글쓴이가 문장 속에 숨어 있다. ‘단풍이 들었다’고 하면 글쓴이보다 정보가 도드라진다.

<독립신문>(1896년)만 봐도, 사설(논설)에는 ‘-노라’(‘미리 말씀하여 아시게 하노라’), 단신(잡보)에는 ‘-더라’(‘종을 아침에 조련하였다더라’), 정부 공고(관보)에는 ‘-다’(‘방윤극이가 삼월 십일에 죽다’), 광고에는 ‘-오’(‘보시고 단골로 정하시오’)를 쓰더군. ‘-노라’와 ‘-더라’ 모두 1인칭 주어를 요구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글에 대한 책임이 글쓴이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기입해 놓았으니.

우리 문장이 ‘-다’로 정착된 과정은 글쓴이를 경험의 증언자에서 진리의 전달자로 승격했다는 뜻. 식도 역류만 아니라면, 역류(레트로)도 아주 나쁘진 않아 보인다. 글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주체가 드러나는 ‘-더라, -노라’도 유행하기를 꿈꾸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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