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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위드 코로나’, 위드의 새로운 발견

등록 2021-11-03 17:53수정 2021-11-04 02:32

최근 한국에선 ‘위드 코로나’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 대다수 외래어는 의미 전달이 쉬운 명사인데, 전치사이자 기능어인 ‘위드’까지 끌어온 특이한 사례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한국에선 ‘위드 코로나’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 대다수 외래어는 의미 전달이 쉬운 명사인데, 전치사이자 기능어인 ‘위드’까지 끌어온 특이한 사례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버트 파우저|언어학자

얼마 전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한국어 단어 26개를 새로운 표제어로 등재했다. ‘오빠’, ‘치맥’, ‘먹방’, ‘한복’ 등을 ‘태권도’(1962)와 ‘김치’(1976)처럼 영단어로 인정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선 ‘위드 코로나’가 널리 쓰이고 있다. ‘코로나’는 라틴어 학명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나왔고, ‘위드’는 영어 전치사다. 전치사는 기능어다. 외래어의 기능어는 그 뜻을 전달하기 어렵고, 처음 들을 때 누구나 다소 독특한 느낌을 갖는다. 의미 전달이 쉬운 건 명사다. 공교롭게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새로 등재된 한국어는 거의 다 명사다.

한국어와 영어처럼 언어학적으로 거리가 먼 언어 사이라면 문자나 문법 구조, 단어의 구성 방식이 많이 달라 단어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의미의 이해는 언어적인 거리의 한계보다 외교 관계 또는 문화 교류의 밀도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어는 영어에서 많은 단어를 흡수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디지털 혁명과 가속화된 글로벌화에 따라 언어 전반에 영어의 영향은 더욱 강력해졌다. 그렇게 보면 ‘위드’ 같은 기능어를 받아들이는 것도 시간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드 코로나’는 특이하다. ‘위드’는 ‘같이’라는 뜻인데, 한국어로 옮기면 ‘코로나와 같이 사는 것’이 되고,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으로 바꾸면 ‘코로나와 같이 살자’쯤이 된다. 완전 방역은 어렵고, 이제부터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면 한국어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데, 왜 ‘위드 코로나’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외래어 사용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원래 기존 언어에 없던 것을 언어 속으로 유입시키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영어권에서 받아들인 ‘김치’는 물론 이번에 등재된 ‘한복’처럼 영어에 없던 것을 있는 그대로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하나는 이미 있는 것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처음 받아들일 때 사용자로 하여금 일정한 정신적 거리감을 갖게 한다. 따라서 낯설기도 하지만 원래 알던 사물이나 현상을 다소 미화하거나 매력적으로 여기게 한다.

이번에 등재된 또 하나의 단어인 ‘오빠’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영어에는 이미 ‘빅 브러더’(big brother)가 있는데 ‘오빠’를 새로운 단어로 받아들인 이유는 뭘까. 영어권에서 ‘big brother’는 친오빠가 아니면 거의 쓰지 않는다. ‘오빠’보다 의미가 좁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팝의 ‘오빠’는 ‘big brother’보다 더 매력적인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학습되었고, 결국 공식 단어로 받아들여졌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국 남성들은 배우자를 ‘집사람’ 대신 ‘와이프’로 지칭한다. ‘집사람’은 가부장적인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듯한 어감이 있는 반면 ‘와이프’는 한결 중립적이고, 선진적인 느낌을 준다.

한국 사회의 ‘위드 코로나’ 채택은 어쩌면 두번째 이유에서 비롯한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인 모두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지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이 답답하다. 지쳐 있다.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을 국민들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덜 답답하게 여기길 바라는 마음, ‘코로나’는 어쩔 수 없지만 어쩐지 ‘위드’를 앞에 붙이면 국민들이 막막한 현실을 조금은 멀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말이다.

미국 역시 이런 현상은 비슷하다. 거의 모든 전문가는 코로나19와 같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위드’를 사용한다. 하지만 정치가들은 이 주제의 언급은 어떻게든 피하면서 백신 접종만 강조한다. 여기에서 미국 언론이 부쩍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endemic’(풍토병)이다. 17세기 중반 영어에 등장했으며 고대 그리스어에 뿌리를 둔 라틴어에서 온 것이니, 물론 새로운 외래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다. 답답한 현실을 다루면서 굳이 이렇게 낯선 외래어를 쓰는 것 역시 대상과의 거리를 갖게 하려는 의도의 일환이다.

코로나19와 같이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넓어지고, 일상으로 받아들여진 뒤에는 이 현실을 굳이 외래어로 미화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드 코로나’라는 표현 역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로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위드’는 이미 한국어에 정착을 시작했고, ‘위드 코로나’가 사라진 뒤에도 한국어에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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