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까놓고 말해, 당신은 ‘단계적 일상 회복’과 ‘위드 코로나’ 중에서 어떤 말이 더 친숙한가? 나는 ‘위드 코로나’ 쪽인데, 왜 그럴까? 우리말에 대한 애정 부족? 설마.
모든 말은 현지화한다. 한 언어 안에도 이질성이 뒤섞여 있다. 하물며 다른 말에 들어가면 애초의 모습 그대로일 리가 없지. 말은 집 떠나면 고생이 아니라, 바뀐다. 영어도 싱가포르에선 싱글리시, 스페인에선 스팽글리시, 프랑스에선 프랑글레, 한국에선 콩글리시. 쉽게 눈에 띄는 건 단어다. ‘핸드폰, 카센터, 모닝콜, 원샷, 백밀러(백미러), 리모콘(리모컨), 오토바이, 사인’. 옥스퍼드 사전에도 오른 ‘스킨십, 파이팅’도 콩글리시다. 콩글리시 중 상당수는 일본식 영어이고. ‘잘못’ 만든 영어가 아니다. 현지화한 영어다. ‘셀룰러폰’보다 ‘핸드폰’이 이해가 더 잘 되는데 어쩌라고.
외국 신문에서 ‘위드 코로나’도 콩글리시라고 지적하자 몇몇 언론에서 이를 받아쓰더라. 그러면서 ‘위드 코로나’가 ‘영어권에선 알아들을 수 없다’느니, ‘일본식 영어’라느니 하면서 이 말이 ‘불온하다’고 덮어씌우더라. 영어권 사람들이 이해 못 하는 건 당연하지. 또 ‘일본식 영어’면 어떤가? 사람들은 기원을 따지며 말을 쓰지 않는다. 생활이 먼저이므로. ‘위드 코로나’는 방역 정책이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뜻하기도 한다. 이미 하나의 개념어로 자리잡았다.
외제든 짝퉁이든 어떤 말이 내 입에 달라붙었다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남’이 뭐라 하든 우리는 우리식 영어를 쓰는 거다. ‘내땅내영!’(내 땅에선 내 맘대로 영어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