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40년 전에 나온 문자의 역사 책을 보면 한국은 여전히 한자와 한글을 함께 쓰는 혼합문자 사회로 묘사된다. 한겨레신문의 한글전용은 한자 지식이 교양의 잣대였던 시기에 한글만으로도 지식 축적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언어 평등을 앞당겼다. 한글전용을 거부하는 신문들도 이젠 한자를 덜 쓴다. 유력 정치인의 성(李, 尹, 洪)이나 국가명(韓, 北, 美, 中, 日), ‘與, 野, 靑, 檢’처럼 자주 입에 오르는 대상, ‘母, 車’처럼 다들 알 법한 한자어, ‘故 ○○○ 선생, 前 ○○○ 대표’처럼 고정된 표현 정도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의 문자만으로 정보를 기록할 수 없다. 하다못해 아라비아 숫자, 단위 기호(m, ㎏), ‘&, #’ 같은 특수기호를 섞어 쓴다. 영어가 문제인데, 한겨레도 고민이 깊어 보인다. 가급적 쓰지 않되, 쓴다면 ‘국제통화기금(IMF), 국제올림픽위원회(IOC)’처럼 한국어 대역어를 먼저 쓰고 괄호 안에 영어를 집어넣는다. 제목에는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쓰기도 한다(‘WTO 발표’).
‘브이시아르, 시시티브이, 피아르, 큐엘이디’처럼 대역어 없이 한글로 영어를 옮겨 쓰는 경우는 더 난처하다. 한국이 국제원자력기구 의장국이 되었다는 기사에 쓰인 ‘아이에이이에이’라는 글자는 얼마나 생소하던지. 저 기구를 적는 방법은 적어도 여섯가지가 있다. ‘IAEA, IAEA(국제원자력기구), 아이에이이에이, 아이에이이에이(IAEA),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원자력기구’. 어떤 것이 남녀노소 모두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표기 방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