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접시에 초밥을 얹어주며 주인장은 ‘짭짤하니 간장하지 말고 먹으라’고 한다. ‘간장을 찍다’는 뜻일 텐데, 초밥집이 아니라면 알 수 없었을 거다. 어느 고깃집 외벽에 굵은 글씨로 ‘고기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흐음, 고기를 먹으라는 뜻이렷다.
영어에는 명사였던 단어가 꼴바꿈 없이 그대로 동사로 쓰이기도 한다. ‘fish’는 ‘낚시를 하다’, ‘e-mail’은 ‘이메일을 보내다’라는 뜻인데, 그 명사로 할 수 있는 대표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bus’는 ‘버스로 이동하다’, ‘text’는 ‘문자를 보내다’라는 식.
한국어는 ‘하다’를 붙여야 한다. ‘공부하다, 운동하다’처럼 앞말에 대부분의 뜻이 담겨 ‘하다’가 할 일이 크게 없는 경우가 많지만, ‘나무하다’나 ‘밥하다’처럼 사물 명사가 오면 달라진다. ‘땔감을 마련하다’, ‘밥을 짓다’라는 뜻을 가지니 말이다. ‘약하다’는 ‘마약을 복용하다’, ‘머리하다’는 ‘머리를 다듬다’, ‘한잔하다’는 ‘한잔 마시다’를 뜻한다. 가만히 보면 그 행동과 결부된 사회문화적 관행과 연결되어 있다. ‘나무하다’가 나무를 심거나 나무로 뭔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땔감을 마련한다는 뜻인 것도 나무를 ‘땔감’으로만 대했던 시대상황과 닿아 있겠지.
맥락에 따라 다른 뜻을 갖기도 한다. ‘선물로 귀걸이했어’와 ‘귀걸이하고 권투를 했어’가 다르듯이, ‘저녁해 놓았어’라는 말에 ‘저녁하고 들어갈게’라 답하면 싸움이 날 듯. ‘택시하다, 버스하다’가 노동자에게는 운전으로, 사장에게는 회사운영으로 읽히는 걸 보면, 말 속에는 사람이 들어앉아 있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