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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늘 서울 하늘은 1년 전 기분으로

등록 2021-10-07 18:15수정 2021-10-08 02:34

[사사로운 사전] 원도|작가·경찰관

한평생 감정에 시차를 느끼며 살았다. 살아온 세월을 굽어봐도 지금, 이란 건 없었다. 현재의 행복에 미래의 불안을 곁들였고 현재의 우울에 과거의 불안까지 끌어와 한층 과장되게 모든 걸 껴안으며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지, 그에 반해 감정이란 놈은 얼마나 강력한지를 절절히 느낄 뿐이었다. 불안이 몇번이나 내 곁을 떠나려 했음에도 붙잡은 건, 곱씹어보건대 도리어 나였다.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깨닫고 머리를 긁적이다 보면 13년 전 중학생 시절 쭈그리고 누워 혼자 울던 나로부터 한 발자국도, 단 5분도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혼자 운전하는 밤이면 머리를 적시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다 돌연 6년 전 애인을 뒤로하고 떠나오던 그때의 저녁으로 돌아가버린 적도 부지기수다. 6년 전의 밤이나 지금의 밤이나 같은 하루라고 가정해도 이질감이 없을 만큼 감정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르다 못해 고여버려 악취만 풍기는 사이, 13년이든 6년이든 얼마간의 시간이 존재하든, 그 모든 시차를 감내하고 마는 나의 감정. 감정에서의 표준시간대는 언제 도래하는가.

물리적인 시차를 가장 절실히 느꼈던 건 3년 전 뉴욕에 갔을 때였다. 미국 뉴욕과 대한민국 서울의 시차는 14시간, 서머타임이 시행되는 시기엔 13시간이다. 나는 서머타임이 시행되지 않는 겨울에 방문했으므로 온전히 14시간의 시차를 거슬러 날아간 셈이다. 한국이 10월2일 오전 11시라면 뉴욕은 10월1일 오후 9시가 된다. 낮밤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입장. 존 에프(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해 지면에 발을 딛자마자 휴대전화 전원을 켰지만 한국은 새벽이어서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엄마에게 보낸, 무사히 도착했다는 짤막한 안부를 끝으로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버린 2018년 겨울의 감정은 3년 하고도 14시간을 날아 지금까지 나를 종종 깨우고 있다. 이번 겨울에도 홀로됨을 느끼거나 외롭거나 사무치거나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배가 고프거나 내복을 입어도 춥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고도 뉴욕에서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테지. 아주 좋게 포장해서 풍부한 상상력과 순간에 대한 기억력이 있다는 점은 나에게 축복일까. 글을 쓰는 사람에게 넘치는 감정만큼 필요한 게 또 어디 있겠냐 싶지만 굳이 이 정도까지 찰랑거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이규리 시인의 시 ‘많은 물’ 속 시구처럼, ‘삶에 물기를 원했지만 이토록 많은 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헤엄쳐서 나갈 수 있는 정도의 수위는 되어야지 여태껏 너무 밀물이었네.

‘시차’는 어떤 일을 하는 시간이나 시각에 차이가 지거나 지게 하는 일, 또는 세계 표준시를 기준으로 하여 정한 세계 각 지역의 시간 차이를 뜻하는 단어다. 굳이 직항 비행기를 타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로 날아가지 않아도 나는, 현재와 과거의 나 사이의 시차를 벗어나지 못했고 미래에 다가올 나를 향한 시차를 좁히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현재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 공기처럼 퍼지는 감정을 현재의 감정으로만 국한해 받아들이는 일. 너무도 어렵고 성공한 적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마해야만 하는 일. 삶의 지향점은 되도록이면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느끼기. 거기에 욕심 한 숟가락을 넣는다면 아무쪼록 행복하기.

평소 국물이 들어간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는 헬스와 함께 식이조절을 시작한 이후 식사 때마다 큰 괴로움에 빠지고 있다. 이 순간 먹는 국물 한 숟가락만큼의 열량을 소모하려면 내일 쇠질을 얼마나 해야 할까. 복근운동 하다가 우는 거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입맛이 뚝 떨어지고 국물로 향하던 숟가락이 멈추고… 우울한 일이 펼쳐지지만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지금 맛있으면 된 거지! 나의 밥상에까지 시차를 들고 올 순 없다는 생각으로. 그리하여 밥상에서만큼은 제법 표준시간대를 찾았다는 별것 없는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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