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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큰 소리

등록 2021-10-03 17:59수정 2021-10-04 02:03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나는 목소리가 작고 가늘다. 마초처럼 안 보이는지 상대방에게 별다른 경계심을 사지는 않는다. ‘말발’이 잘 안 먹히는 게 문제이긴 하다. 주요 인물이 아닐 듯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고나 할까. 뭐, 어떠랴, 틀린 말도 아니니. 말수도 적은 편이라, 그야말로 ‘민주평등사회’에 어울리는 목소리이다.

나는 목소리가 큰 것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내 얘기가 타인의 공간으로 넘어가는 건 싫다. 친구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남이 들으니 작게 말하라 한다. 반면에 타인의 큰 소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뿐더러 즐기기까지 한다. 모르는 사람이 거침없이 떠드는 걸 듣는 게 좋다. 버스에서 딴 사람도 들리게 ‘혼잣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운이다. 영화를 보며 “어이구, 거길 왜 또 들어가!” 하며 안타까워하는 어르신의 외침은 얼마나 정겨운지.

그 사람들은 왜 ‘공공장소’에서 크게 말을 할까 궁금하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 건 따로 있다. 왜 우리는 큰 소리로 말하는 걸 ‘무례함’이나 ‘무식함’이라는 가치판단과 연결시키는 걸까? 때와 장소를 가려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건 현대인이 갖춰야 할 예의범절이라고 보는 것일 텐데, 그런 감각의 출처는 어딘가? 식당에서 잠시 앉는 자리처럼 시시때때로 생기는 사적 공간은 정말로 나만의 공간인가? 큰 소리는 그 공간을 침범하는 게 분명한가?

사회질서가 무서운 건, 그것이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를 한덩어리로 구조화함으로써 이 세계를 유일하고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는 나의 이 얄팍한 감각이 의심스럽고 마음에도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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