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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방언이 문화유산이 될 날

등록 2021-09-08 18:32수정 2021-09-09 02:32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지역 고유의 언어인 방언은 사라지거나 변화를 겪고 있다. 2019년 10월9일 오전 제주 문화를 알리는 ‘탐라문화제’가 열린 제주시 산지천 탐라문화광장 일대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의 고유한 형태가 남아 있는 제주어(제주 방언) 퀴즈 대회가 열리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지역 고유의 언어인 방언은 사라지거나 변화를 겪고 있다. 2019년 10월9일 오전 제주 문화를 알리는 ‘탐라문화제’가 열린 제주시 산지천 탐라문화광장 일대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의 고유한 형태가 남아 있는 제주어(제주 방언) 퀴즈 대회가 열리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저|언어학자

미국의 9월 일기예보는 태풍과 허리케인 소식이 잦다. 오래전 살던 가고시마에서도 태풍 소식을 자주 들었다. 일본 열도 끝의 그곳은 ‘태풍의 길’에 위치해 있어 연속적으로 태풍이 지나가곤 했다. 처음 보낸 가을, 피해를 제대로 입었다. 지붕에서 비가 새고 부엌 창문이 깨져버렸다. 마을 수리점에 연락하니 다음날 수리 기사 두명이 찾아왔다. 문제점과 고칠 부분을 의논하면서 가고시마 방언의 한복판에 들어갔다 나왔다. 대학에서 만난 분들과 대화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2016년부터 고향 미시간주 앤아버를 떠나 로드아일랜드주에 살고 있다. 같은 미국이지만 이곳에는 이곳만의 방언이 있다. 보스턴 쪽에 가까우면서 뉴욕 쪽과도 엇비슷하다. 하지만 자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로 나이 많은 분들이나 블루칼라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방언을 실감한다. 점검을 위해 찾아온 전기 기사 역시 매우 진한 방언을 쓰고 있었다. 즉, 나이와 직업에 따라 방언을 쓰는 정도가 다르다는 의미다. 그 이유는 뭘까? 이런 현상의 의미는 또 뭘까?

방언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말부터 커지기 시작했다. 언어학과 인류학이 각자 독자적인 학문으로 발전하면서부터였다. 이 시대 연구자들은 세계 여러 언어를 분류하기에도 바빴지만 언어 사이의 관계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해 방언 역시 분류했다. 이뿐만 아니라 의무교육이 확산되면서 교육 현장에서 일종의 ‘표준’을 제시하고, 이를 ‘국어’로 가르치기 시작하자 방언이 곧 소멸될 것을 예감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중등 교육에 이어 대학 교육이 보편화되었고, 도시화가 빨라지면서 ‘표준’의 언어는 급속도로 보급되어 교육 수준이 높거나 화이트칼라 계층 사이에서 방언은 점점 시대에 뒤떨어진 ‘로컬의 산물’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더해 교육의 기회를 위해 이동이 잦아진 것 역시 영향을 미쳤다. 같은 지역 학교로 진학하던 시대를 지나 점점 다른 지역, 다른 도시, 나아가 다른 국가로 이른바 유학을 가는 사례가 늘어났다. 대학 스스로도 어디에 있든 스스로 로컬이 아닌 글로벌을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경우가 늘었고, 학생들 역시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제시한 ‘표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물리적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이동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들은 로컬을 벗어나 표준으로, 표준을 넘어 글로벌 세계로 진입하면서 방언의 세계에서 떠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계층 차이가 뚜렷했다. 즉, 블루칼라 계층에서는 방언 사용 비중이 사뭇 높았다. 대부분 학교 졸업 뒤 지역에서 직장을 얻으면서 자란 곳에서 계속 살게 되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비슷한 말을 쓰는 사람이 여전히 많으니 굳이 ‘표준’을 새롭게 습득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로컬에 뿌리를 깊이 내렸기 때문에 방언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같은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노인들이 방언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방언의 미래가 궁금하다. 어떻게 될까? 우선 유입되는 사람들의 유형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어느 지역에 이른바 고학력 화이트칼라 계층이 많이 들어오면 서로의 표준이 비슷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블루칼라와 자영업자들의 유입이 많아지면 각자의 로컬 언어가 섞여 새로운 지역 방언이 등장할 수 있다. 이민자가 많은 로드아일랜드의 경우 스페인어를 모어로 쓰는 이민자들이 영어를 배워 쓰면서 이 지역 언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직 특화된 부분을 정리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어렴풋하게 감지된다.

이민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가고시마는 오히려 내부 변화로 방언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말하자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표준’을 학습하고, 화이트칼라나 이른바 고학력자들로 이루어진 주류가 사용하는 ‘표준’이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방언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내가 만났던 가고시마 집 수리 기사는 이미 은퇴를 했을지도 모른다. 뒤이어 그 일을 하는 젊은 수리 기사 역시 가고시마에 살긴 해도 그가 진한 가고시마 방언을 쓸 거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세대가 바뀌면서 방언은 점점 사라지고, 남는다 해도 발음이나 억양 정도일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이미 지역마다 방언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20세기 위대한 문학작품 <태백산맥>과 <토지>에 기록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이미 문화유산이 된 것처럼 보이는 건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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