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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부르카의 귀환은 탈레반만의 문제가 아니다

등록 2021-09-08 16:02수정 2021-09-09 02:33

아프간 여성 인권의 문제를 탈레반과 도시의 사회활동 여성들 사이의 관계만을 기준으로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육과 사회활동은 꿈도 못 꾸는 70%의 아프간 여성들을 도우려면, 탈레반에게만 여성 인권을 촉구한다고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탈레반이 재집권을 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7일(현지시각) 사립대에 다니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커튼을 사이에 두고 수업을 받고 있다. 탈레반은 1차 정권(1996~2001) 때와 달리 여성들의 교육은 허용하겠지만 남성들과 분리된 교실을 사용해야 하고, 눈만 내놓을 수 있는 니캅을 착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여성들은 얼굴 전체를 드러내는 히잡을 쓴 채 수업을 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이 재집권을 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7일(현지시각) 사립대에 다니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커튼을 사이에 두고 수업을 받고 있다. 탈레반은 1차 정권(1996~2001) 때와 달리 여성들의 교육은 허용하겠지만 남성들과 분리된 교실을 사용해야 하고, 눈만 내놓을 수 있는 니캅을 착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여성들은 얼굴 전체를 드러내는 히잡을 쓴 채 수업을 했다. 카불/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인권은 탈레반 등장 전에 문제가 됐다.

1978년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은 문맹 타파를 위해서 여성에게 의무 공교육, 신부 지참금 폐지, 혼인의 자유를 선포하는 한편 토지 개혁 등을 발표했다. 당시 인구의 90% 이상이 사는 비도시 지역의 봉건적인 부족사회 질서를 해체하려고 했다. 특히, 토지 개혁과 여성권 확대는 봉건적 부족 질서의 기득권자와 부족민 모두에게 격렬한 저항을 불러 봉기로 이어졌다.

미국과 파키스탄이 즉각 이 봉기에 개입해 사회주의 정권이 위태로워지자 소련도 군사 개입을 했다. 아프간에서 43년 간이나 지속된 전쟁의 한 원인에는 여성권 확대가 있었던 셈이다. 국제사회는 봉기가 소련을 반대하는 배외 투쟁으로, 이슬람 세계의 지하드(성전)로 전개되는 데에만 관심을 뒀지, 여성 인권이나 토지 개혁은 애초부터 주목하지 않았다.

그래도 1992년까지 지속된 사회주의 정권에서 여성 진출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던 1996년 의사의 40%, 공무원의 60%, 교사의 70%가 여성이었다. 문제는 이런 여성 진출이 사회주의 정권의 통치력이 미치던 카불 등 대도시에 한정됐다는 것이다.

아프간은 예전부터 중앙권력이 직접 미치는 수도 카불과 봉건적 부족사회의 권력 질서가 작동하는 비도시 지역으로 이분화됐다. 전쟁은 도시와 비도시의 분리와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사회주의 정권 하의 대도시에서는 현대화의 혜택을 누리고 여성의 진출도 활발해졌으나, 무자헤딘 운동이 장악한 비도시 지역에서는 전쟁에 시달리며 봉건적 질서가 온존됐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에도 이런 도시와 비도시의 분리와 격차는 커졌다. 미국은 수천억달러의 개발 지원을 퍼부었는데, 이는 고스란히 그들의 통치력이 미치는 대도시와 그 주변 지역으로만 갔다.

하지만 전쟁의 피해를 겪는 비도시 지역의 주민들에게 소련이나 미국이 내세우는 명분과 개혁은 오히려 증오의 대상이 됐다. 지난 43년 동안 비도시 지역의 여성들에게는 소련군 공격용 헬기 Mi-24D의 기총 소사, 군벌들의 성폭행·납치·인신매매·통행료 징수, 미군의 드론 공격에서 자신과 부모 자녀들이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학교도 없고 집 밖을 나서면 안전이 위태로운 이들에게 교육과 사회활동은 큰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탈레반의 등장은 그들에게는 전쟁의 무질서를 척결하고 나름대로 조화롭던 전통적 질서의 회복으로 수용됐다.

탈레반이 등장할 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여성의 상황은 전쟁만 빼고는 아프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탈레반의 창립자 물라 오마르는 사우디가 자신들의 이상향이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이나 다른 서방 국가에서 사우디의 여성 문제를 거론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아프간에 대해서는 이를 전쟁의 명분으로까지 삼았다.

2001년 10월 미국의 아프간 침공 직후 캐롤린 멀로니 민주당 하원의원은 최초로 부르카를 입고 의회 발언을 했다. 그는 부르카를 입으니 숨쉬기도 힘들다며 “이 전쟁은 수행해야만 하는 전쟁”이라고 부르짖었다. 미국의 무슬림 여성활동가인 라나 압델하미드는 지난 8월16일 트위터에 멀로니의 당시 사진을 올리고 말했다. “내가 9살 때 한 여성 의원이 부르카를 쓰고 아프간 침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봤다. 나는 무슬림 여성으로서 나의 정체성이 미국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년이 지나 우리는 무엇을 이뤘단 말인가?”

전쟁은 사회를 절단낸다. 탈레반 치하에서 카불의 700여명 여성 언론인 중 100여명이 직장에 나오고, 정부 구성에서 여성은 각료급 이하의 직급에 기용되고, 여성에게는 남녀 분리의 대학 교육이 허용되고, 여성들이 시위하고 강제 진압되고, 강제 진압에 관여한 탈레반 대원이 체포된다는 소식들이 나온다. 이를 두고 탈레반이 여전히 억압적이라고도 하고, 달라졌다고도 한다.

확실한 것은 아프간에서 봉건적 질서에 사는 70%의 비도시 여성에게는 이런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도시 지역에서 활동하던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우려는 당연하다. 그러나 아프간 여성 인권 문제를 탈레반과 도시의 사회활동 여성들 사이의 관계만을 기준으로 논하는 것은 멀로니 하원의원이 빠진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 교육과 사회활동은 꿈도 못 꾸는 비도시 지역의 여성들에게 가장 절실한 전쟁의 완전한 종식과 재건, 이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은 탈레반에게 여성 인권을 촉구한다고만 해서 가능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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