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빈이 3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8강전에서 독일의 한잉 쪽으로 스매싱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원도|작가·경찰관
“신유빈 선수는 한잉 선수의 공격이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2021년 8월3일, 2020 도쿄올림픽 여자탁구 단체전 8강 경기가 진행될 때 현정화 해설위원이 했던 말이다. 17살에 생애 첫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탁구의 미래 신유빈 선수의 8강전 상대는 독일팀 에이스이자 38살의 백전노장이며 2016 리우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한잉 선수. 지팡이를 휘두르는 마법사처럼 탁구 라켓을 휘둘러 공의 회전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상대를 괴롭혀 난공불락으로 느껴지던 한잉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나 스스로는, 너무도 부끄럽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경기는 신유빈 선수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경기라고.
1세트에서 6점을 내주며 고전하던 신유빈 선수는 일순간 달라진 모습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침착하고도 날카롭게 2.7g 정도에 불과한, 구기 종목 중 가장 가볍다는 탁구공을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속도로 대처하면서 점차 점수를 따냈다. 시간이 갈수록 한잉 선수는 당황했고 신유빈 선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했다.
“한잉을 상대로 이렇게 빨리 적응하다니 놀랍습니다.”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가 한 말이다. 실로 그랬다.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한잉 선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유빈 선수가 정말로 이길 수 있는 상대처럼 보였다. 선수가 포기하지 않았는데 일개 관중인 내가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게 이리도 부끄러울 수 있을까. 김연경 선수의 외침처럼 내 표정은 진작부터 죽는 중이었지만 신유빈 선수는 매 랠리, 매 호흡 성장하고 있었다. ‘성장’(成長)은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짐’이란 뜻이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키가 쑥쑥 자라 있어 매일 새롭게 타점을 설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그의 인터뷰처럼, 그는 경기를 하는 그 순간에도 분명 키와 실력 모두 성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한잉 선수처럼 느껴지는 장애물이 얼마나 있었을까. 누가 봐도 극복하기엔 무리다 싶은 장애물도 있었고, 똑바로 서서 마주하면 별것 아니었음에도 지레 겁먹고 주저앉아 하염없이 위를 쳐다보기만 했던 것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후자가 더 많은 듯하다. 늘 감정에 휘둘렸고 현재 상황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아파했으며 오래도록 몸져누웠던 세월이다. 털고 일어나면 되는데 해본 적 없으니 습관처럼 자주 누웠다. 젊은 시절 누구나 겪는 성장 과정이라 하기에 ‘젊은’이란 표현은 민망할 만큼 찬란하다. 신유빈 선수는 경기 내내 흔히 어리거나 젊음의 속성으로 대변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겁 없이 무작정 덤비지도 않았고 회전을 엄청나게 준 공으로 끊임없이 유혹하는 한잉 선수의 손짓을 덥석 물지도 않았다. 수면 아래 세상처럼 고요하고도 침착하게, 기회가 왔을 땐 날렵하고도 확실하게 다음 걸음을 딛으며 성장한 그는 진정 젊은이였다.
한편 신유빈 선수는 득점할 때마다 보통 선수들이 내지르는 우렁찬 기합 대신 “뺙”과 비슷한 소리를 내어 ‘삐약유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장’이란 단어에는 ‘소리를 크게 지름’이란 뜻도 있다. 신유빈 선수는 경기 내내 작고 단단하게 ‘성장’(聲張)하는 동시에 ‘성장’(成長)을 거듭해 한국 탁구의 미래임을 입증했다.
“한잉 선수는 단 한번도 같은 공을 보낸 적이 없어요. 돌리고, 깎고, 이번엔 또 너클.”
현정화 해설위원의 설명과 함께 실시간으로 경기를 보던 나도 제법 ‘성장’(聲張)했다. 함께 시청한 수많은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2020 도쿄올림픽 여자탁구 단체 8강전. 신유빈 선수는 한잉 선수에게 1-3으로 졌고 총 게임스코어 2-3으로 패배하면서 경기는 끝이 났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날의 성장을 발판 삼아 더욱 굳건히 도약할 수 있으리라. 진정한 성장을 보여준 모든 종목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패럴림픽에서도 멋진 성장(成長)과 우렁찬 성장(聲張)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