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여러 동작을 할 수 있으면 뭐 하나. 하나라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야지. 합기도(Aikido)에 ‘전환’이라는 동작이 있다. 쉽다. 정면을 향해 발을 앞뒤로 벌려 선다. 앞발을 축으로 삼아 시계 반대 방향으로 180도 돌면 된다. 흐느적대지 말고 중심을 유지하면서 재빨리 돌라. 뒷발은 가급적 직선으로 움직이되 몸은 팽이처럼 탄력 있게. 시선은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하고. 이 쉬운 동작은 초보자뿐만 아니라 십수 년을 수련한 유단자들도 매일 반복한다. 반복하면서 생각한다. 무게 중심을 어느 정도 분배할지, 뒷발을 끌지 살짝 띄울지, 다리를 어느 정도 구부릴지, 이런 생각을 하며 돌지, 생각을 하지 않고 돌지!
생각을 카메라로 찍어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 세숫대야 물을 마당에 끼얹듯, 생각했던 것이 종이 위에 글자들로, 단어들로, 문장들로 쫙 뿌려지는 기계 말이다. 그런데 이놈의 글쓰기는 왜 생각대로 안 되는가. 생각에서 문장이 튀어 오르는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머릿속에 문장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쓰레기봉투에 담긴 유리 조각처럼 뚫고 나올 뿐. 글쓰기와 생각은 차원이 다르다. 글쓰기는 언제나 일차원이었다. 생각이 많다고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다고 못 쓰는 것도 아니다. 글쓰기는 생각보다는 행동하기에 가깝다. 쓰고 나서야 뭘 쓰려 했는지 알게 된다. 쓰지 않은 생각은 아무 생각도 아니다. 쓰고 나서 생각하라는 말은 그래서 적절하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문보다는 무에 가깝다. 반복이 최우선이다. 동분서주할 필요도 없다. 소재 하나로 꾸준히 반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