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 매미 한 마리가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미의 다리는 아직 움직이고 있었지만 몸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변에 있는 개미 떼가 곧 매미 몸을 감싸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의 한평생은 매미가 기대했던 것만큼 행복했을까 질문해보다 잠시 숙연해졌다. 함께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거인은 과학도감을 보듯 허리를 굽히며 명랑하게 말했다. “말매미네! 배가 뾰족한 게 암컷이야. 말매미가 요즘 도심에 많이 늘었는데 알고 있었어?”
매미는 울음소리 때문에 이름이 매미다. 한국에는 12종의 매미가 서식하는데 매미의 이름이 매미가 되기 전인 과거에는 참매미가 우점종이었을 것 같다. 참매미가 “맴맴-” 운다. 이를 듣고 매미라 불렀을 것이다. 도시에서는 한낮이 되기 전까지 참매미 소리를 주로 들을 수 있다.
한국 매미 중에 가장 몸집이 큰 말매미는 ‘쓰으-’ 하고 운다. 애매미나 참매미처럼 리드미컬하게 울지 않고 금속 기계음처럼 일정하게 운다. 소리 자체도 81㏈(데시벨) 정도로 크다. 80㏈이 작업 환경에서의 소음 측정 기준이니 민감한 이들에게는 소음처럼 들릴 수도 있다. 주로 낮에 운다. 토종이지만 몸집도 크고 소리도 커서 외래종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
말매미가 도시에서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17~18년째 매미를 연구하고 있는 윤기상 두루중학교 교사(생물음향학 박사)는 도심의 열섬 현상과 도시 가로수종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매미들은 기온이 (적당히) 높을수록 울음소리를 내는 배 근육의 떨림이 좋아지는데 몸집이 큰 말매미는 높은 기온에 더 힘차게 울 수 있다고 한다. 또 도시 가로수의 대부분인 벚나무나 느티나무, 플라타너스를 말매미가 특히 좋아하기 때문에 도시에 말매미가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덩치도 크고 목청도 큰 말매미가 서식하는 나무에는 다른 매미들이 잘 살지 않는다고 한다. 머문다고 해도 울음소리 크기가 말매미보다 더 작기 때문에 말매미가 우는 한낮에는 다른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참매미가 도시에서 주로 이른 아침부터 우는 이유도 말매미랑 같이 울면 암컷을 부르는 간절한 자신의 세레나데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말매미가 시끄럽긴 해요. 그런데 사실 말매미는 죄가 없어요. 도시를 이렇게 만든 사람의 자업자득이죠. 그렇지만 말매미가 주로 행동하는 시간대에 휴식을 취하고 잠을 청해야 하는 야간노동자들에게는 말매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윤 박사는 이렇게 말매미의 마음을 대변했다.
올여름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며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지자 낮밤으로 울던 매미 소리만이 도시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줬다.
사람도 힘들었지만 기후 공식이 깨진 여름을 나기는 매미도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장마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만큼 비가 잦고 서늘했던 5·6월을 거쳐 7월 초의 짧고 마른 늦장마, 폭염의 7월을 지나고 나니 8월 중순부터 더위가 꺾이고 비가 잦다. 가을을 앞두고 다시 장마다. 보통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시작될 때 우화하는 매미들이 올해는 일찍 지상에 나왔다. 아직 더 울 수 있는데, 8월이 열흘이 남았는데 태풍도 아니고 장마로 기온이 떨어졌다. 비가 오면 암컷이 자신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수컷 매미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무료하고 답답했던 여름을 함께 보낸 매미들은 곧 숨을 다할 것이다. 매미들의 합창이 멈추면 올해 여름과도 이별이다. 말매미만큼 올여름을 치열하게 보냈던가. 가을에는 매미알을 품은 가로수의 단풍을 볼 여유가 모두에게 찾아오길.
디지털콘텐츠부 기후변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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