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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아버지의 글쓰기

등록 2021-08-22 14:48수정 2021-08-23 02:09

아버지는 광부였다. 광산 붕괴 사고로 코를 다친 다음에는 목수가 되었다. 그 후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매일 일기를 썼다. 몰래 일기장을 펼치면 ‘절골 김○○씨네 지붕 슬라브(슬래브) 공사 2만원’, ‘문곡 황씨네 담장 수리 1만원’, ‘황지시장 실비집에서 권○○과 대포 한잔. 내가 냄.’ 식이었다. 매일 쓰는 아버지의 글쓰기는 당최 늘지 않았다. 재작년과 어제의 일기가 매일반이었다. 하루를 포대기 하나에 다 쓸어 담아서 그렇다.

혹시 당신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글쓰기는 사건을, 대상을, 생각을 잘게 쪼개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오늘 아침 맨 처음 한 일이 뭔가? 양치질? 그냥 ‘양치질을 했다’고 퉁치면 안 된다. 그걸 종이 한 장 가득 쓸 수 있어야 한다. 조금밖에 남지 않은 치약을 양 손가락으로 눌러 낡아 뭉개진 칫솔 위에 짜 윗니부터 아랫니로 앞니에서 어금니 쪽으로, 마지막으로 헛구역질을 하며 엷게 낀 혀의 백태를 닦고 수도꼭지에 얼굴을 왼쪽으로 돌려 물을 한 모금 머금은 다음에 올칵올칵 입을 헹구고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며 혀를 날름 내밀어보았다, 고 해야 한다.

글쓰기는 시간을 달리 대하는 일이다. 쓰지(기억하지/말하지) 않으면 시간(인생)은 장맛비에 젖어 떡이 된 책처럼 된다. 쓴다는 건 한 덩어리가 된 시간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떼어내어 구겨지고 얼룩진 종이 위에 적힌 흔적들을 다시 읽는 일이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다. 시간만이겠나. 모든 생명은 특이하며 순간순간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쯤은 알게 되지 않겠나.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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