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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표정을 기억한다

등록 2021-07-30 04:59수정 2021-09-02 14:39

사사로운 사전

원도

어떤 표정은 아주 오래 기억된다.

카페에 있던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자 일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아기 엄마를 쳐다보던 손님들의 표정 같은 것. 머리칼에 바람이 불 정도로 고개를 휙 돌리며 노려보던 많은 표정과 그 표정에 함축된 악의 같은 것. 아기 엄마가 빽빽 우는 아기를 안고 황급히 카페 밖으로 달려 나갈 때까지 거두지 않던 공범자들의 표정 같은 것. 이윽고 아기 엄마가 밖으로 나가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재개되는 그들 사이의 대화 같은 것. 뷔페에서 밥을 먹던 아기가 울자 검지를 입에 갖다 대고 쉿- 쉿- 안 그치면 우리 여기서 밥 못 먹어. 제발 쉿 하자-를 반복하던 어느 부모의 간절한 표정도. 표정이 주는 압박감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유일한 언어를 빼앗긴 아기들은 곧 자라서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았을 때의 일이다. 드문드문 오던 소나기가 본격적인 호우로 이어지려는 기세를 보이자 그에 발맞춰 사람들도 덩달아 바삐 움직이는 풍경을 보던 내 눈에, 어느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버스는 정류장을 지나 3차선의 도로 중 2차로로 이동했고 신호 대기에 걸려 잠시 정차했는데, 할아버지가 버스 출입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기사님은 정류장이 아니기 때문에 태워드릴 수 없으며 곧 신호등이 바뀔 테니 안전한 인도로 돌아가라고 대답했다. 몇번의 실랑이 끝에 돌아서던 할아버지는 버스를 향해, 정확히는 내가 앉은 자리의 창문을 향해 손에 든 커피를 집어 던졌다. 그와 동시에 증오와 분노 그 모든 감정이 응축된 표정이 할아버지의 얼굴에 떠오르는 걸 보았다. 카페에서 다급히 밖으로 나가던 아기 엄마의 등 뒤로 사람들이 짓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악의였다.

추리 영화에서 죽은 이가 남긴 다잉메시지를 보며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나가듯, 산 사람이 짓는 표정은 일종의 ‘라이브메시지’와 비슷해서 그걸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치열한 갈등의 현장에 숙명적으로 놓이는 경찰관이 된 이후 표정을 통해 정보를 빨리 읽어내는 감각은 더욱 발달했는데 가령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가정폭력 현장에서 아무 일 없었다고 태연히 말하던 남자의 말과 상반된 표정을 짓던 여자를 보며 그 집안에 흐르는 분위기를 알아내거나, 자녀 세명을 태운 채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된 남자의 억울한 표정을 보며 이번 일이 처음은 아닐 거라는 느낌을 받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사람이 짓는 다양한 표정도 현장에서 목도했다. 폭행을 휘두르는 가해자의 표정, 보행자를 충격한 이후 머릿속으로 계산기만을 두드리던 운전자의 잔뜩 구겨진 표정, 어느 날 실직 상태에 처한 이후 갈 곳을 잃어버린 노숙자의 표정, 저보다 약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면 가차 없이 무례하게 굴던 비겁한 자의 표정들. 그런 표정을 읽던 나는 발목까지 적시는 감정을 다 소화시키지 못해 체기를 느끼는 날이 잦았다. 사람이 안면근육을 저런 식으로 쓸 수 있구나,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사람이 사람에게. 표정은 아주 많은 이야기와 깨달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나의 인생 선배와도 같았다.

‘표정’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 또는 그런 모습”이다. 코로나19의 창궐 이후 마스크가 생활화되면서 얼굴을, 근본적으로는 표정을 가리는 게 너무도 당연한 세상이 되면서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보지 못하고 읽지 못하게 되었나. 한편으론 이런 물음도 생긴다. 마스크가 굳이 필요하지 않던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에서 나는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고 읽어야 할 걸 제때 읽어왔던 걸까. 표정을 통해 도출한 정보값에 오류는 없었을까. 그리고 마스크 뒤에 숨은 지금의 난, 어떤 표정을 지으며 타인을 대하나. 나도 모르게 눈빛이 서늘해지거나 악의를 품고 있진 않은지. 나의 표정은 타인에게 오래 기억되는 종류는 아니기를 바란다.

작가·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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