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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울타리 표현

등록 2021-07-25 17:52수정 2021-07-26 02:37

‘개인적으로 그 결정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게 멋져 보이지만, 항상 그럴 수 없다. 누구에게든 직설화법은 부담이 간다. 시원하게 ‘그 결정은 옳지 않소!’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말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좋아한다. 내 주장이 지나치게 직설적이지 않고 한계가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결보다는 공존과 협력적 말하기를 꾀한다. 그러한 장치를 ‘울타리 표현’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자기 발언에 확신 없음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고 상대에게 신뢰를 얻는 역설적 책략이다.

‘개인적으로는’, ‘제 생각에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더 살펴보긴 해야겠지만’, ‘잘은 모릅니다마는’ 같은 군더더기 말을 씀으로써 발언 내용이 자신에게 국한되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강요할 의도가 없음을 내비친다. ‘듯싶다, ~일 수도 있다, ~일지도 모른다’ 같은 표현도 직접성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맛있다’를 ‘맛있는 거 같다’고 하는 것도 주장을 추측으로 강등시킴으로써 상대에게 다른 판단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른바 ‘원전마피아들’은”, “속된 말로 ‘삥뜯기’는”과 같이 특정 개념 앞에 ‘이른바, 속된 말로, 시쳇말로’를 씀으로써 해당 개념과 그 말을 쓰는 자신 사이에 빠져나갈 공간을 만든다.

자기 견해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만들어 상대방에게는 생각의 여지를, 나에게는 안전을 보장하는 비책인데 적당히 써야 좋다. 지나치면 비굴해 보일 수 있고, 인색하면 소위 ‘완고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지나치면 비굴하고, 인색하면 완고하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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