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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 많은 조 바이든

등록 2021-07-14 15:57수정 2021-07-15 02:37

사회의 언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에서의 취임식 전날인 2021년 1월19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주에서 고별연설을 하던 중 장남 보 바이든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뉴캐슬/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에서의 취임식 전날인 2021년 1월19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주에서 고별연설을 하던 중 장남 보 바이든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뉴캐슬/로이터 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들을 때마다 가수 조용필의 ‘한오백년’이 떠오른다. 1980년대 초 한국어를 배울 때 처음 들은 이 노래가 엉뚱하게도 미국 대통령 연설을 들으며 떠오른 건 왜일까.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특별한 이미지가 없었다. 상원의원을 오래 했고, 약 8년 동안 부통령으로 일했지만 시민들은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2020년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왔지만 시선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장 ‘안전한’ 후보로 보이기 시작하더니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었고, 본선에서 트럼프를 이겼다. 그렇지만 그의 이미지는 어쩐지 애매모호했다.

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취임식부터였다. 그는 1972년 교통사고로 아내와 한살 난 딸을 잃었다. 2015년에는 장남을 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보통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다. 말 그대로 “한 많은 이 세상”을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팬데믹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애도하는 그의 얼굴에는 극도의 슬픔과 비극을 경험한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아픔, 즉 한(恨)이 서려 있다. 그런 그를 볼 때마다 바이든이야말로 어쩌면 오늘날에 딱 맞는 대통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 언론도 그의 이런 면에 주목하는데, 바이든의 이런 정서는 주로 ‘감정이입’(empathy·엠퍼시)으로 표현한다. ‘엠퍼시’라는 단어가 눈에 걸린다. 슬픔에 빠진 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 틀린 건 아니지만 연설에서 느껴지는 그의 마음은 아무래도 ‘엠퍼시’보다는 훨씬 더 넓고 깊어 보인다. ‘한오백년’을 떠올린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저 마음은 ‘한’으로 표현하면 딱 맞겠지만 아쉽게도 영어에는 그 감정을 담을 단어가 없다.

언어학적으로 보자면 매우 흥미로운 사례다. 영어 원어민들에게 한이라는 감정이 없다고는 볼 수 없는데, 그 감정을 표현할 단어는 없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2019년 한 방송에서 그 무렵 펴낸 책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저자 인터뷰를 할 때였다. 인터뷰 중간에 듣고 싶은 음악 요청을 받았다. 나는 카보베르데의 국민가수 세자리아 에보라의 ‘소다드’(Saudade)를 청했다.

‘소다드’ 역시 영어에는 없는 포르투갈어 단어다. 사랑하는 대상이 떠오를 때, 그리움과 슬픔을 통해 대상과 소통하는 느낌을 표현한다. 한국어의 한과 정서적으로 겹치면서도 그리움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은 다소 다르다. 배를 타고 떠난 뒤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 대한 슬픔이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의 마음이 실린 ‘소다드’는 이민자가 많은 카보베르데 사람들에게 긴 설명 없이도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영어에 비록 소다드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지만,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며 느끼는 바이든의 마음은 한 또는 소다드에 가까울 것이다.

한, 소다드, 그리고 엠퍼시.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언어의 보편성에 관한 이야기다.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인종과 지역에 따라 차이점도 많지만 공통점은 훨씬 더 많다. 모든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은 모두 비슷하다. 언어별로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드러내는 단어가 다르다고 해서 그런 감정이 그 언어권의 유일한 감정은 아니다. 그렇게 보면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야말로 인류의 보편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는 19세기 이후 민족주의 강세로 언어의 보편성보다는 개별 언어의 독특함에 주목했고, 특정 언어의 우월성에 대한 통설이 수없이 생산되었다. 언어학에서도 민족주의는 여지없이 발현되어 제국주의와 함께 피지배 민족은 지배 민족의 언어를 우월한 것으로 여길 것을 강요당했고, 받아들여야 했다. 이러한 언어의 우월주의가 지배 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언어의 세계에서 우열이란 타당한 걸까. 연설에 서린 한 많은 바이든의 마음을 느낄 때마다 언어의 보편성, 나아가 인류의 보편성을 거듭 확인한다. 소위 글로벌 언어로 대접받는 영어가 못 담는 그의 마음을 한이 담아내고 있고, 형언 못 할 나의 마음은 때로 소다드로 표현할 때 정확하다. 그렇게 보면 언어 교류야말로 인류 보편성에 어울리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즉 언어의 우열을 따져 하나의 언어로 모두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맞춰가기보다 더 많은 언어로 더 많은 감정을 잘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좁은 지구에 함께 사는 인류 보편성에 더 맞는 태도가 아니겠느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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