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핵심은 인권이다. 국가의 공적 기관이 한 사람의 인권을 어떤 이유에서든 짓밟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 아니다. 국민의 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국민의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다는 것은 국민 모두를 짓밟는 것이 된다.
정찬|소설가
신화가 인류에게 영원한 이야기인 것은 인류의 무의식에 깃든 ‘원형적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시아스와 아폴론’ 이야기는 권력의 원형적 에너지를 품고 있는 빼어난 신화다.
마르시아스는 피리를 부는 목자(牧者)였다. 그의 피리 연주는 신들의 어머니 키벨레의 슬픔을 위로할 정도로 뛰어났다. 어느 날 여신 아테네가 피리를 불고 있는데 장난꾸러기 에로스가 웃었다. 노한 아테네는 피리를 던졌고, 땅으로 떨어진 피리가 마르시아스에게 발견되었다. 그 후 마르시아스는 아폴론에게 누가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지 겨루어보자고 했다. 마르시아스는 피리를 불었고, 아폴론은 리라를 연주했다. 마르시아스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인간이고 아폴론은 신이기 때문이다. 패배의 형벌은 가혹했다. 소나무에 묶여 산 채로 피부가 벗겨졌고, 수족이 잘렸다. 마르시아스의 가죽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동굴에 버려졌다. 그곳은 암흑에서 암흑으로 가는 통로였다. 동굴에 버려진 마르시아스의 가죽은 그의 고향 프리기아의 음악이 들려오면 진동했다.
이 신화에 드리운 상징의 그림자에서 노무현의 죽음이 어른거린다. 노무현은 2001년 12월 대선후보 출마 선언 연설에서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 말에서 ‘신의 권력’에 도전했던 마르시아스의 영혼이 느껴진다. 신은 인간에게 절대적 권력자다. 그럼에도 인간에 불과한 마르시아스가 신에게 도전했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조선일보> 2009년 3월30일자 김대중 주필 칼럼에서 “어쩌면 노씨와 그의 사람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정도는 노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인간’에 불과한 마르시아스가 신의 권력에 도전한 것이 그에게는 ‘까부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되어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을 향한 정권과 검찰, 언론의 공적 폭력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그 죽음의 캄캄한 심연, 그 심연이 불러일으키는 현기증 속에서 문성근은 노무현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으로 2010년 8월 ‘국민의 명령’을 결성하고 거리로 나가 ‘유쾌한 100만 민란’을 시작했다. 기득권 정치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야권단일정당 결성을 목표로 한 시민운동이었다. 그 운동이 추구한 것은 ‘정치가 생활이고 생활이 정치가 되는’ 온·오프 정당이었다. ‘유쾌한 100만 민란’의 정신이 일 년여 후 ‘혁신과 통합’으로 이어짐으로써 야권단일정당의 토대가 형성되었다.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가 견뎌온 ‘풍찬노숙’의 결실이었다.
2011년 8월30일 새로운 야권통합운동기구 ‘혁신과 통합’이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연 첫 공식행사에서 문재인과 문성근, 조국은 통합수권정당을 만들어 민주진보정부를 탄생시키자고 역설했다. 이런 역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민주당이다. 민주당을 이끈 문재인이 촛불혁명을 바탕으로 2017년 봄 정권을 교체한 순간 암흑에서 암흑으로 가는 통로의 동굴에 버려진 ‘마르시아스의 가죽’이 진동했을 것이다.
2019년 8월9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서울대 교수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로부터 18일 후인 8월27일 검찰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전면적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9월9일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자 수사의 강도가 한층 높아졌다. 검찰의 그런 행위는 누가 보아도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무단적 저항이었다.
조국은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검찰개혁을 주창해온 법학자였다. 2011년 출간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에서 “민주화 이후 검찰은 군사정권 시절의 ‘하나회’에 견줄 만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민주사회에서 통제받지 않는 ‘괴물’을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주권자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통제하에 있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서 통제받지 않는 ‘괴물’을 견제해야 한다”라고 썼다. 검찰개혁의 ‘기본 설계자’였던 조국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의 밑그림을 그렸다. 검찰권력의 입장에서 그는 ‘마르시아스’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조국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2019년 10월14일 임은정 검사는 페이스북에 “타깃을 향해 신속하게 치고 들어가는 검찰권의 속도와 강도를 그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요. 죽을 때까지 찌르니, 죽을 수밖에요”라고 썼다. 검찰권력이 조국에게 원한 것은 ‘마르시아스의 가죽’이었다.
조국과 그의 가족에 대한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가능했던 것은 언론과의 긴밀한 공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2019년 8월9일부터 그해 12월까지 기사량이 100만 건에 이르렀다. 최순실(최서원) 관련 기사량의 열배였다. 기사의 대부분은 검찰이 흘려준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문제는 언론이 그 정보들을 검증 절차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받아썼다는 데에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그 기사들을 살펴보면 편파, 왜곡, 가짜 뉴스들로 얼룩져 있다. 군부독재정권에 감금되었던 언론의 자유가 민주화로 풀려나자 언론이 기업화되면서 스스로 이익권력집단으로 전락한 결과였다. 노무현은 그런 언론을 개혁하려 했고, 언론은 그런 노무현을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시간 속에서 변화해나가는 생명체다. 이 생명체에게 언론의 언어는 공기와도 같다. 언론의 언어가 탁하면 민주주의가 들이마시는 공기도 탁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깊이는 공동체가 영위하는 삶의 깊이이자 생각과 문화의 깊이다. 그래서 공동체는 민주주의라는 생명체의 내부를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인권이다. 국가의 공적 기관이 한 사람의 인권을 어떤 이유에서든 짓밟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 아니다. 국민의 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국민의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다는 것은 국민 모두를 짓밟는 것이 된다. 조국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공적 폭력은 참혹했지만, 그 폭력을 지지하고 조장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 참혹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 신화에서 희생자는 성스러운 존재다. 희생이 은폐된 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조국은 자신의 희생으로 무엇을 드러내었는지, 한국 사회는 냉철히, 무겁게 들여다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