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광훈 ㅣ 녹색연합 전문위원
경기도가 주도해온 보편적 재난지원금에 이어 기본소득 정책이 정가의 쟁점이 되었다. 정치권에선 “알래스카나 하는 포퓰리즘”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 스탠퍼드대 기본소득연구소에 따르면, 스페인, 미국, 독일, 이란 등 8개국이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고 있고, 영국, 캐나다도 기본소득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이 지난해부터 85만가구에 가구당 월평균 135만원을 지급하면서 사상 최대의 실험을 진행해 각국 정책당국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외국의 기본소득 선례들은 규모가 작고 애초 취지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을 모방만 하던 과거 관행에 기대어 비아냥댈 한가한 상황인가?
최근 보도처럼 국내 로봇 도입률은 종업원 1000명당 87대로 세계 2위인데, 이는 3위인 일본의 2배를 넘고 1위인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라는 점에서 실질적 세계 1위다. 최근에는 비좁은 창고에서 빠르고 정교하게 화물을 다루는 로봇도 등장해 전자·자동차에 집중되었던 국내 로봇 도입 추세가 물류업계로 확대될 전망이다. ‘고용 없는 성장’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험할 상황이다.
2019년 국내에 도입된 로봇만 28만대로 정부가 지난 3년간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 인원 18만5000명을 거뜬히 뛰어넘어 고답적인 고용정책으로는 변화 추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더욱이 지난해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갈등이나 스마트계량기 사업을 진행 중인 한전이 구형 계량기 검침원 5000여명을 정규직화한 사례는 형평성과 디지털혁명에도 역행한다. 특히 한전 사례는 일본이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 전력시장을 개방하면서 태양광과 스마트계량기로 무장한 신규 전기사업자 700여개가 등장한 사례와 대비된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양날의 칼’로 시간과 에너지 소비를 절약하며 효율적인 저탄소경제 진입에 유리한 반면, ‘플랫폼 종사자’ 등 비숙련 노동자들에게 악몽이다. 그렇다고 신기술을 막고 단순노동직종 고용을 공기업으로 확대하는 정책은 국가적으로도 개인의 자아실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격변기에 필요한 일은 선거철에만 찾아오는 ‘간헐적 연민’과 ‘선별적’ 고용정책이 아니라 기본소득과 체계적 직업교육 등 보편적 복지다.
경기도 역시 정책을 가다듬으면 좋겠다. 지난해 경기도는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탄소세로 확충하는 방안을 공론화했다. 그러나 국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이 전력부문에서 발생함에도 전기를 마치 ‘공공재’처럼 여기는 국내 제도를 방치한 채 탄소세로 성과를 거두긴 어렵다. 실제로 이미 석탄소비세가 도입되었지만 전기요금에 투명하게 반영되지도 않는다. 새로운 세수는 프랑스 정부의 ‘디지털세’ 추진에서 보듯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전기를 공공재로 여기는 국내 제도의 근본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부실한 복지를 개선하기보다 전기요금으로 생색내며 면피해온 국회의 오래된 관행과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이 갖는 모순은 어차피 큰 갈등을 앞두고 있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석탄화력이나 방사능 누설로 얼룩진 원전으로 싼 전기를 공급하던 시대는 끝났다. 국민들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되 전기는 제값을 주고 쓰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오래전 단행한 전력시장 개방을 통해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신기술 확산을 장려하되 기본소득을 맞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