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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스포츠 인권을 살리기 위한 제언 / 강신욱

등록 2020-07-15 17:48수정 2020-07-16 02:40

강신욱 ㅣ 단국대 국제스포츠학과 교수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먼저 처절한 책임을 통감한다. 수많은 국민이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고 대통령까지 나서 스포츠 인권을 걱정하는 현실에 이르렀다. 이러한 비극이 이번이 처음이었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특별조사단에 크게 기대도 하고 대한체육회의 대책 성명을 반길 것이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얼마나 많은 비극이 스포츠계에서 이어졌으며 그때마다 대한체육회는 얼마나 많은 성명서와 대책을 쏟아냈나? 문체부도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스포츠계에서 폭력, 성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정도다. 그 이전에도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스포츠계와 사회는 언급을 금기시했다. 한마디로 선수들은 맞는 게 당연했고 성폭력도 그저 그런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체육학계와 정치권, 언론이 들고일어나면서 노무현 정부 이후 지난 20년 가까이 스포츠계의 폭력, 성폭력 문제는 우리 사회의 척결 전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비웃기라도 하듯 이 문제는 근절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실한 처방과 부적합한 시스템 때문이었다. 사고가 나면 매번 조사단이나 위원회가 꾸려지고 책임질 사람들은 뒤로 쓱 빠졌다. 사퇴나 사과는커녕 모든 책임을 당장 문제가 된 사람들과 기관에만 몰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나중에 다시 슬쩍 돌아왔다. 조사단은 조사 뒤 처벌, 고발, 대책을 발표하고 임무를 마무리했다. 대책에 무슨 센터나 위원회 신설과 보강이 거의 약방의 감초처럼 포함됐다.

스포츠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다. 선수들은 자신의 선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결정도 자신이 할 수 없는 제도적인 무력감도 수시로 경험한다. 따라서 신고 시스템은 무용지물로 봐도 무방하다. 이번 최숙현 선수의 경우에서처럼 인권센터의 기능조차 이미 선수들 사이에서 신뢰를 상실했다. 사고만 나면 시행하는 전반적인 실태 조사도 얼마나 무의미했는지 이번 비극이 여실히 보여줬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지도자를 포함하여 선수들 간 발생하는 폭력, 성폭력 문제를 항상 누군가 보고 있다고 인지할 만한 시스템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상설 모니터링 시스템이고, 그 누군가는 바로 선수 자신들이다. 초등학교로부터 프로 선수, 그리고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국가대표에 이르기까지 12만명 정도의 모든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연 2회가량 소속 팀에서 경험한 폭력, 성폭력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휴대폰의 앱 기능을 개발하여 간편하고 비밀스럽고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면 된다.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응답 결과는 반드시 소속 기관장에게 기밀문서 형태로 보고하고 문제가 있는 단체의 경우 즉각 조사에 착수하면 된다. 조사 내용은 폭력, 성폭력 문제에 국한하되 향후 스포츠계에서 이 문제가 근절되었다고 판단할 때까지 계속할 필요가 있다.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모든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이로운 몇 제도와 더불어 시행된다면 선수들의 인권 개선과 지도자들의 교권 향상에도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한번 최숙현 선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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