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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웰다잉 강사가 보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 / 정은주

등록 2016-10-17 18:23수정 2016-10-17 19:06

정은주
웰다잉 강사

나는 웰다잉 강사로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전의료의향서 교육을 하고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란 본인이 건강할 때 미리 자신의 임종기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문서로 남기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연명치료’가 아닌 ‘연명의료’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치료’는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의학적 개입을 하는 것을 말하지만, 임종기에 이르러 어떤 증상 개선도 불가할 때 생명만 연장하는 개입은 ‘치료’가 아니므로 ‘의료’라고 칭하는 것이다. 백남기씨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때 가족들이 혈액투석 등 치료를 원치 않아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병사’라는 사망진단서를 썼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사전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가 ‘임종기’ 의료를 다루고 있음은 죽음 관련 상식에 있어 기본이다. 만일 치료가 가능한데도 시행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면 가족보다 주치의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연명의료계획서란 환자나 가족의 의사를 반영하여 의사가 최종 판단해서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명의료 중단은 외인사나 병사라는 사인을 바꿀 만큼 적극적인 행위가 아니다. 임종기의 존엄성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수동적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의료계의 전문지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웰다잉 강사의 상식만으로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는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제2조 4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명의료에 대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고 이 법률은 명시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도록 애쓴 전문가들 중에 의료 현장에서 헌신하는 의사들이 있었기에 법률 공포가 가능했다. 그들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 무게를 결코 가볍게 두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 덕택에 이제 의료 현장의 죽음이 더 이상 일반인에게 가려진 성역이 아니라 모두에게 활짝 열린 소재가 되었다. 이 법안이 시행되는 내년 8월 이후부터는 한국 사회의 죽음의 질에 대한 논의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백선하 교수는 국감 현장에서 ‘존엄한 죽음과 연명의료 거부는 본 사안의 본질과는 다른 철학적, 법적, 사회적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정확히 철학적, 법적, 사회적 문제이며 이에 더하여 의료인의 양심과 기본 자질을 묻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는 사실 앞에, 궤변으로써 본질을 흐리지 말기 바란다.

좋은 죽음을 강의하는 강사로서 이토록 비통한 죽음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고개 숙여 고 백남기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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