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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박근혜 정부의 전략적 기조 전환과 ‘저강도 긴급조치’ -‘전교조 법외노조화 전략’을 보며 / 조희연

등록 2013-10-17 19:08수정 2013-10-29 13:26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박근혜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만들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말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 규약을 수정하지 않으면 전교조의 조합 등록을 취소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이것이 신문에 보도된 순간부터 우리 사회가 정말 엄청난 정치사회적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것이 아닌가 우려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 전교조에는 해직 교사들이 조합원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현재의 노동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이미 금속노조 등 많은 산별노조에서 해직 조합원이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산별노조는 해직 조합원의 복직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검토했고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이 문제를 인지했으나 이런 식으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려는 정책을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현실과 법의 괴리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는 관행이고,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 노동계에서도 이 법 조항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고 의회에도 관련 법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법외노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상당히 ‘공세적인’ 전략적 기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 초기의 유연성은 사라지고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 출범 이후 전략적 기조를 강경 기조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시대의 긴급조치들을 ‘고강도 긴급조치’라고 한다면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같은 전략은 ‘저강도 긴급조치’로 규정할 수 있다. 고강도 긴급조치가 외재적으로 잔인하게 탄압을 감행했다면, 저강도 긴급조치는 해고자의 보호가 주된 임무인 노조로 하여금 법적 지위를 유지하든가 아니면 스스로의 책무를 포기하든가 선택하도록 ‘내재적’으로 잔인하게 위협하는 식이다. 박근혜 정부는 김기춘 체제 이후 다양한 저강도 긴급조치를 통해 야당과 국민, 시민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저강도 긴급조치

곧바로 목소리를 높여 이를 비판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강경 노선으로 ‘1987년 이후 민주주의’의 핵심 의제를 역전시키는 방침을 전략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재고를 요청하고 싶다. 학부모 가운데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전교조의 모든 입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교원평가 등 많은 쟁점에 대해 전교조와 의견을 달리한다.

그러나 전교조 법외노조화 전략은 전교조를 두둔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주지하다시피 노태우 정부는 1000여명의 해직 교사를 양산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엄청난 갈등을 겪었다. 그 후 이 문제는 1998년 2월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사회통합 이슈로서 해결되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에도 최고의 권고 사항이 교사와 노조의 노동기본권 보장이었고, 그중 하나가 뒤늦게 해소된 것이다. 이를 역전시키는 것은 다시 원점에서부터 한국 사회를 갈등으로 되돌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이기에, 나는 지극히 큰 우려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변화된 보수’ 기조 유지를 바라며

잘못하면 한국 민주주의와 한국 정치의 전반적인 발전이 큰 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대선에서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으로 도전을 많이 받았지만 박정희 시대와는 다른 ‘변화된 보수’의 이미지로 승리할 수 있었다. 가장 핵심적으로 사회경제 정책이라는 점에서 기존 보수의 입장을 반복지에서 현실적 복지로, 나아가 경제민주화 지향으로 바꾸었다. 정치적으로는 인혁당 사건이나 민청학련 사건, 긴급조치 9호 등 박정희 시대의 독재적 억압에 대해서-당사자들의 기대에는 현저히 못 미쳤지만-‘전향적’으로 사과하고 그 피해자를 끌어안으려는 전환을 시도했다. 이미 박근혜는 박정희 시대의 대북 대결 노선의 전환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굵직한 전환의 이미지를 박근혜 후보가 입음으로써 ‘52 대 48’의 팽팽한 각축 속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극단적인 보수의 요구나 전향적인 사회경제적 정책으로 부담을 많이 지게 되는 대기업의 불만에도 퇴행하지 말고 앞으로 굳건히 전진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그래야 ‘보수의 혁신’이 이루어지고 그것으로 진보가 도전을 받으면서 한국 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 나는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보수의 중도화’라는 기조가 촛불시위 이후 강경 기조로 퇴행한 데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대선에서는 ‘중도화한 보수’의 이미지로-이명박과는 다르게-승리해놓고 이제 그 이미지를 벗어던지려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정작 자신의 승리의 계기가 된 전환의 이미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법의 후퇴, 기초연금의 실질적 철회, 국가정보원 개혁 거부 등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전략은 아마도 이러한 ‘전환의 이미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또다른 전면적인 정치사회적 갈등에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전교조 법외노조화 전략을 박근혜 정부의 전략적 방침 전환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전략적 방침의 전환은 다른 전략 선택도 가능했음을 전제로 한다. 나에게 묻는다면, 저강도 긴급조치가 아니라 보수의 혁신을 향한 ‘중단 없는 전진’을 정답으로 제시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저강도 긴급조치의 희생양이 된 전교조도 ‘박근혜가 놓은 덫’에 걸려서는 안 된다는 전술적 퇴각론에서부터, 이러한 저강도 긴급조치에 결연히 싸우는 것이 운동의 기본이라고 하는 전략적 원칙론에 이르기까지 깊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안다. 나는 전교조 조합원들이 총투표를 통해 더 큰 단결의 결의를 다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퇴행에 대해 결연한 태도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전교조의 대응과 무관하게, 나는 지금이라도 박근혜 정부 내부에 합리적인 고민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초기에 이렇게 강경책을 이어가는지, 이것이 전략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성찰해 보기를 바란다. 강경 노선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조희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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