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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의혹, ‘정치적 찍어내기’ 입증할 단단한 팩트 제시 못해”

등록 2013-10-16 19:50수정 2013-10-18 10:10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해설·분석 기사의 품질
<한겨레>는 진보적 가치와 비판언론을 지향하고 있다. 한겨레는 또한 ‘신문 상품’이기도 하다. 한겨레는 사회적 현상과 사태에 대해, ‘격조 있는 고급지’로서 폭과 깊이를 갖춘 날카로운 해설·분석 기사를 보여주고 있는가?

지난 5월 창간 25돌을 맞아 ‘열린 편집국’을 표방하며 새로 발족한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제1기 마지막 회의(6차)가 14일 열렸다. 토론의 주제는 ‘해설·분석 기사의 품질’이었다. 열린편집위원들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논란과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 기초연금 공약파기 등에 대한 한겨레 보도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일부 위원들은 한겨레가 채 전 총장 의혹 보도의 성격을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적 찍어내기’로 규정했으나 정작 이런 정황을 입증할 팩트는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에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을 놓고 위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뉴라이트’로 규정한 건 현재의 논쟁 구도를 잘못 진단한 것이며 민주당 발표를 그대로 추종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신인령 위원장의 사회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 내용을 정리해 지상 중계한다. 11월부터는 일부 위원들이 바뀐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활동에 들어간다.

제1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참석자)

<위원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사외 위원>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윤고은 작가
이주원 경북대 학생·영문3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사내 위원>

박찬수 <한겨레> 콘텐츠본부장(부위원장)
정재권 편집국 에디터부문장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 ‘채동욱 의혹’ <조선일보> 보도윤리 문제, 스치듯 지적에 그쳐

신인령 본격 토론에 앞서 지난 5차 회의에서 제기된 통합진보당 보도와 관련해 <한겨레> 편집국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게 있다고 하니 들어보자.

정재권 지난번 회의에서 <한겨레>가 통합진보당의 이른바 ‘5월모임’ 참석자들을 만나 녹취록의 진실을 파고들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한겨레> 9월12일치 32면) 이에 관해 이 사건을 현장에서 취재해온 기자들이 소명을 해왔다. 사건이 발생한 뒤 한달여 동안 5월모임 참석자들과 접촉하려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통합진보당 쪽과 두 차례에 걸쳐 5월모임 참석자들의 심층 인터뷰를 어렵사리 추진했지만 막판에 무산됐다. 1차는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에, 2차는 통합진보당 중앙당의 다수 핵심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요청했다. 진보당 관계자들에게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고, 질문지를 전달하고, 그쪽에서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고, 그러다가 뒤늦게 인터뷰 약속이 파기되고 다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또다시 보류되고…, 이렇게 한달을 보냈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이 국정원에 또다른 수사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게 그쪽의 가장 큰 우려였다. 결과적으로 5월모임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지 못한 점은 편집국 간부로서 뼈아프게 생각하고 겸허하게 지적을 받아들이지만, 현장 기자들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은 열린편집위원들께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도 현장 기자들과 편집국의 또다른 팀에서 인터뷰를 재추진하고 있다. 편집국 내부에는, (인터뷰를 하게 되면) 자칫 한겨레가 통합진보당 쪽의 얘기를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5월모임의 객관적인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린다.

신인령 편집국 내부의 고민과 노력을 잘 들었다. 그럼 이번 회의의 첫 주제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 논란 보도에 관해 얘기를 해보자.

제정임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논란’과 관련해 <조선일보> 등이 첫 보도 당시엔 공직자 윤리 문제이고, 법을 집행하는 검찰총장의 간통죄 위반이란 점에서 보도할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공직자의 사생활 보도가 과연 공익적 목적에서 이뤄진 것인지, 확인된 사실에 의거한 보도인지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 보도의 맥락과 동기, 즉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의 정치적 전략에 언론이 부화뇌동한 것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미확인 정보를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건 언론보도 윤리에 위배된다. 한겨레는 이 의혹을 처음 보도한 조선일보와 경쟁자 입장에 있는데, 언론윤리 위배 대목을 ‘기자 칼럼’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지적하긴 했으나 조선일보를 포함해 경쟁매체들이 신문보도 윤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배했는지 전면적으로 제기하진 못했다. 취재원도 취재 경위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직접 당사자의 주장이나 반론도 없고, 유전자 감정 등 혼외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기본적인 취재요건도 갖추지 못한 첫 기사는 조선일보의 자체 취재준칙에도 어긋날 것 같다. 타인의 가족관계 정보를 불법 수집한 게 현행법 위반이라는 대목 등을 조목조목 짚어주었다면 좋았겠다. 한겨레가 이런 점들을 스치듯 얘기하고 지나간 인상이다.

박종원 이 이슈는 공직자의 도덕성과 검찰 독립성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띠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르윈스키 성추문이나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 총재의 뉴욕 호텔 여종업원 성추문 등 외국 사례를 많이 보아왔는데 그럴 때 적용한 도덕성 기준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과연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뚜렷한 기준을 갖고 있는지를 한겨레가 이번 기회에 제기하면 좋겠다. 장관급 주요 인사에 대한 청문회를 도덕적 기준으로 보는 것이라면 그 정도가 바람직한지, 또 공직자라면 모든 사생활이 까발려져도 되는 것인지를 한겨레가 짚어주진 못한 듯하다. 이 사안이 어떤 맥락에서 터졌든 그냥 쫓아가는 보도가 아니라 공직자 사생활에 대한 도덕적 기준과 원칙을 우리 시대에 어떻게 설정하는 게 좋은지, 그런 조망을 하는 보도를 해줬으면 좋겠다.

한겨레 초점 ‘검찰 독립성’에서
혼외아들 사실관계 여부로 확대
다른 매체의 보도내용 신빙성과
윤리위반 문제는 충분히 못짚어

■ ‘채동욱 의혹’, 국정원 사태의 국면적 의미 정교한 분석 없어

이주원 한겨레가 ‘정치적 찍어내기’로 설정하고 보도한 기사들을 보면 고위 공직자라 하더라도 사생활까지 문제삼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시각을 어느 정도 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채 전 총장 스스로도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면서 법무부 감찰을 거부했는데, 공직자의 사생활도 진실은 밝혀야 한다. 우리 사회에 공직자 역시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이 자신에 대한 감찰을 거부한 건 큰 문제가 있다. 채 전 총장의 이런 대응방식에 대한 비판을 한겨레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윤고은 한겨레 지면에서 기사에 딸린 ‘표’ 등을 눈여겨보는 편이다.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표나 그래픽은 기사 본문 글보다 눈에 쏙 들어온다. 한겨레가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여론조사한 결과를 다룬 기사(9월18일치 1·5면)에도 도표가 있다. 거기 보면 채 전 총장 의혹 보도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개입했을 것으로 본다는 응답이 절반 넘게 나왔는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여론 지지율 또한 여전히 높은 것으로 안다. 그런 설문조사를 할 때 채 전 총장 문제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설문 항목도 함께 넣어서 좀더 종합적으로 여론의 동향을 보여주고 정확하게 분석해주면 좋겠다. 이 사건에 대한 다른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역할을 한겨레가 충분히 못한 느낌이다. 예컨대 <동아일보>의 칼럼(‘채동욱 아버지 전상서’)이 큰 논란이 됐는데, 해설이나 분석 기사에서 이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했더라면 좋았겠다.

이태호 채 전 총장 의혹을 놓고 사람들은 정치적 탄압이라는 데 관심을 집중했다. 따라서 독자들의 관심에 부합한다는 점에서도 정치적 맥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보도하는 게 좋았겠다. 여기서 정치적 맥락은 검찰총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를 수사하다가 사생활이 털렸는데 이 국면이 과연 국정원 사태의 마지막에 해당하느냐, 아니면 국정원 사태의 또다른 측면에서의 본격화를 의미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경우 특별검사나 수사검사가 압력에 직면한 때는 전체적으로 그 사건의 초기 국면이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옷을 벗고 외압을 폭로하는 일들이 초기에 있었는데, 채 전 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사퇴 압력에 직면한 상황이 국정원 사태의 어떤 국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조계완 이번 사건을 둘러싼 한겨레 보도 태도와 방향은 (혼외아들 어머니로 지목된) 임씨가 신문사에 보내온 자필편지 내용 보도(9월11일치 2면)와 임씨에 대한 전화 인터뷰 기사(10월2일치 2면)를 고비로 약간 전환된 듯하다. 즉 ‘검찰총장 정치적 찍어내기’ 관점의 보도뿐 아니라 혼외아들에 대한 사실관계 규명 쪽으로도 보도 방향이 확대된 것 같다. 그러나 임씨 인터뷰 기사는 <티브이(TV)조선>의 임씨 집 가사도우미 폭로 발언 이후에 실린 것인데 언론사 최초 인터뷰라는 점 외에 혼외아들 여부에 대한 새로운 팩트나 반박하는 내용이 거의 없었다. 자칫 한겨레 역시 이번 스캔들의 선정적 보도에 동참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었겠다. 정치적 찍어내기라고 규정하고 줄곧 보도해온 데서 이제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혼외아들 사실관계 보도 쪽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점을 기사 안에서 독자들에게 적절하게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 혼외아들이든 정치적 배경이든 예단 말자는 게 편집국 대원칙

신인령 혼외아들 사실관계 추적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임씨의 사생활 문제 등까지 복잡해질 수 있다. 한겨레는 그쪽으로 가지 말고 독자들이 관심을 덜 가져도 좋으니 검찰 독립성과 취재보도 윤리 등을 냉철하게 보도했으면 좋겠다.

제정임 한겨레가 청와대와 국정원의 ‘채동욱 정치적 찍어내기’로 성격을 규정했는데 많은 독자들이 동의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심증과 정황을 입증해줄 만한 단단한 팩트에 접근했는지는 아쉬움이 있다. 정치적 맥락에 대한 해설도 필요하지만 주장하는 것을 넘어 이를 뒷받침해주는 팩트를 찾고 다가서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물론 열심히 취재한다고 과연 입증 가능한 사안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 찍어내기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문제의식을 잃지 말고 더욱 분발해주길 바란다. 혼외아들 여부의 사실관계 역시 궁금한 대목이다. 한겨레가 처음 보도할 때는 사실무근의 정보로 채 전 총장을 공격해 찍어냈다고 보고, 혼외아들의 사실 여부는 열심히 추적하지 않다가 <티브이조선>의 임씨 집 가사도우미 폭로가 나오면서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여지를 두는 쪽으로 관점을 다소 바꾼 듯하다. 여론을 고려할 때 이제 공직자 윤리나 정치적 찍어내기 못지않게 혼외아들 여부도 언론이 규명해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할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혼외아들인지 아닌지 여부가 정치적 찍어내기 등 다른 논점을 뒤엎어버리고 물꼬를 틀어버릴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관심과 알권리를 언론이 외면해서도 안 된다. 임씨 집 가사도우미의 정체와 그 폭로 발언은 신빙성이 있는지, 또 채 전 총장이 정정보도 소송을 취하하고 유전자 검사를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스스로 진상규명을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 취재해 보여달라.

박찬수 공직자의 혼외아들 의혹이 보도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채동욱 전 총장이 이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부터는 ‘거짓말’ 문제가 또다른 쟁점으로 떠올랐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퇴진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하야 이유는, 도청 그 자체보다 그 이후에 이 사실을 은폐하고 숨기려 한 행동 때문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에 특별검사가 임명되고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 표결까지 한 핵심 이유도 클린턴의 거짓말 문제였다. 혼외정사든 혼외아들이든 이런 문제는 국민 판단에 따라 용서될 수 있지만, 고위 공직자의 거짓말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게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대체로 합의된 기준이 아닌가 싶다. ‘정치적 찍어내기’라는 배경에 대한 추적과는 별개로, 한겨레가 채 전 총장의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가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재권 편집국 안에서 이번 논란 보도의 기준과 원칙을 놓고 토론을 치열하게 벌였다. 보기에 따라선 조선일보와 한겨레라는 두 언론의 ‘진영논리’가 개입될 소지도 있었다. 임씨가 본인의 처지를 해명하는 편지를 한겨레와 조선일보에 동시에 보낸 것은 이런 양상을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혼외아들 여부든 정치적 배경이든 섣불리 예단하지 말고 경계하자는 게 대원칙이었다. 물론 보도의 초점은 정치적 배경 쪽으로 모았다. 그렇지만 정치적 의도를 확인하는 작업과 혼외아들 여부에 대한 팩트 확인, 그 어느 쪽에서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든다. 정치적 의도와 관련해 청와대 민정수석, 국정원 차장, 검찰 공안부장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민주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 제시됐다. 이렇듯 단순한 심증을 넘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요소들이 등장했음에도 주변부 취재에 맴돌았고 핵심적인 진실에 한발 더 다가가지 못한 것 같다. 채동욱 본인이 혼외아들 의혹에 관해서든 정치적 의도에 관해서든 적극적으로 설명하면 좋았을 텐테 그러지 않았던 점도 취재보도에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교학사 ‘친일·독재미화’ 비판에 치중…심층분석 아쉬워”

■ 역사교과서, 독자적 취재 별로 없고 민주당 발표 받아쓴 듯

신인령 이제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란 기사를 중심으로 토론해 보자.

후지이 다케시 한겨레의 관련 보도는 시종일관 이런저런 역사서술 대목에 문제가 있다는 식이었고 정교한 분석은 거의 없었다. 한겨레가 친일과 독재 미화 중심으로 보도했는데, 특히 식민지근대화론에 기초한 친일 대목을 부각해 비판했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를 읽어보면 그런 부분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한겨레가 자꾸 뉴라이트에서 펴낸 교과서로 규정했으나 뉴라이트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및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강조하는 입장과 흐름이다. 반면 이 교과서는 경제 부분 서술에서 틀린 것도 많고 엉성하기도 하다. 교학사 교과서 저술에 뉴라이트 성향의 경제사학자나 연구소가 참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 문제가 된 교과서는 신자유주의 경제성장 구도와 달리, 오래전의 냉전구도로 후퇴하고 있는 흐름을 보인다. 즉 뉴라이트가 아니고 ‘올드라이트’가 정확하다. 이런 맥락을 짚지 못한 채 한겨레가 친일 미화를 중심으로 보도한 건 역사교과서가 안고 있는 문제의 구도와 초점을 잘못 본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구도라기보다는 대한민국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이라는 냉전 구도가 교과서에서 형성되고 있다. 내가 보기엔 한겨레가 독자적인 취재를 별로 하지 않고, 대체로 민주당에서 내놓은 역사교과서 관련 보도자료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기 때문인 듯하다. 5·16 쿠데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에서 발표한 혁명공약 중 6항(민정이양 약속)이 교학사 교과서에 빠져 있다는 오늘치 보도(10월14일치 9면)는 이미 한달 전에 역사학계에서 지적한 것인데도 민주당이 엊그제 발표했다는 이유로 기사화했다. 이번 교과서 제작에 어떤 인물과 주변 단체가 관련돼 있는 것인지, 즉 한국현대사학회와 토론회를 함께 개최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어떤 관계인지 등을 독자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한겨레 초점 ‘검찰 독립성’에서
혼외아들 사실관계 여부로 확대
다른 매체의 보도내용 신빙성과
윤리위반 문제는 충분히 못짚어

제정임 우리나라가 일제에 그렇게 당했는데도 왜 저 사람들은 아직도 친일과 이승만 독재를 미화하고 이를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려 하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차분히 짚어주는 기사가 아쉽다. 왜 이런 교과서가 만들어지는지, 좀 어려운 ‘식민지근대화론’ 따위를 넘어서 왜 우리 사회 한쪽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끊임없이 존재하는지 그 배경을 친일청산 문제나 독재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 등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도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이태호 역사교과서 문제는 단순한 진영논리로만 파악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교과서 검정제도의 문제라는 관점도 있고, 검정 철회를 요구할 사항인지 아니면 교과서 내용 수정을 요구할 사안인지, 나아가 교과서 시장에 맡길 문제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음직하다. 즉 진보진영이 일관된 입장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일 일본 안에서 일제침략 내용에 대한 교과서 문제가 터졌다면 한국에서 채택반대 운동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교과서의 역사왜곡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개입이란 관점도,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문제다. 이런 다양한 측면의 논쟁거리를 한겨레가 폭넓게 소개하거나 그런 논쟁 지면을 펼쳐 보여주면 훨씬 더 흥미롭겠다.

후지이 다케시 자꾸 교학사 교과서가 진실을 왜곡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자칫, 그러니까 검정제도를 없애고 역사의 진실은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즉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한겨레가 이를 뒷받침하는 격이 될 수 있다. 과거 사실에 대한 역사관의 다양성은 인정하되 구체적으로 잘못된 내용은 문제가 있다는 식의 보도 관점을 취해야 한다. 역사적 해석은 열려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다만 그 해석이 지금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기사가 필요하다. 해석의 다양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면 역사교과서는 국정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에 빠져들고 만다.

김영배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아야겠지만 국가, 법원, 학계 또는 사회적으로 이미 공인했거나 대체로 합의한 역사적 사실을 쉽게 뒤집어선 안 된다. 1980년 5·17은 쿠데타였고 그래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훈장도 박탈되지 않았나. 다양성은 필요하지만, 자유와 방종이 다르듯 다양성에도 한계가 있고 ‘건전한 다양성’이 공존해야 한다. 시대에 따라 역사적 해석이 달라진다고도 말하지만 헌법과 법률 등으로 이미 합의되고 세워진 역사적 사실관계를 뒤집으려면 정해진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언론은 기존의 정당한 역사적 사실을 지켜내기 위한 보도도 해야 한다.

신인령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제대로 기사에 반영되지 못한 탓인지 역사교과서를 다룬 한겨레 기사마다 흔히 제목에 ‘뉴라이트 교과서’란 말이 들어갔다. ‘뉴라이트’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보도 태도는 역사적 사실 해석에 대한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줄곧 뉴라이트 교과서라고 표현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서 한겨레가 기사 제목에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사 내용을 보면 꼭 뉴라이트 내용만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닌데 제목들은 대체로 그렇다.

박종원 역사를 보는 각기 다른 시선들이 있을 수 있다. 역사학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정리된 대목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그런 학자들이 당시에 어떤 시대적 맥락 속에서 정리한 것인지도 알 필요가 있다. ‘거꾸로 본 역사’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교과서는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나의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국가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좋은 국가일수록 다양한 역사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할 수 있다. 이번 역사교과서 논란을 계기로 국가의 개념과 국가주의적 사고에 대한 차분한 기획물을 준비해보면 어떨까 싶다.

■ 기초연금, 다각도로 짚었으나 ‘복지제도 틀’ 대안 조망 미흡

신인령 이제 기초연금 개편안 등 다른 이슈들을 짚어보자.

제정임 기초연금 공약 파기에 대한 여러 측면의 비판을 한겨레가 조목조목 보도하고 있다. 다만 이번 기초연금 문제를 계기로 노인빈곤, 우리 사회 복지제도의 틀, 다른 복지공약의 장래 등을 조망하고 대안을 도출하는 토론마당을 제공하면 좋겠다. 한겨레가 고소득층 부자증세, 실질적인 세부담률 상향조정, 기초연금 수혜 대상자 판별을 위한 소득파악의 어려움을 사설과 기사, 칼럼 등에서 꾸준히 제기했으나 대안들에 대한 종합적인 토론의 장은 아직 열지 않고 있다. 이번 이슈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현실적인 증세 방안들을 토론하고 합의하는 쪽으로 진전시켜 보면 좋겠다. 사회복지세 도입, 부자감세 철회, 외환거래세의 과세 전환 등 여러 증세 방안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즉 여러 대안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을 기울여 달라.

이주원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을 한겨레가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싸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쳤다고 호소하는 스케치성 기사들이 많다. 동정론으로만 이 문제를 풀어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겨레 사회면 기사들이 대개 소수계층 얘기를 다뤄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그들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그치는 느낌이 있다.

신인령 이제 오늘 6차 회의를 끝으로 제1기 열린편집위 활동을 마치게 됐다. 그동안 이른 아침에 나와 토론에 참여해 주셔서 고맙다.

정리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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