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희망의 버스’ 릴레이 기고 ① 송경동 시인
“짐을 정리해서 내리고 문자와 소중히 간직했던 사진들을 지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력 중 제가 선택한 건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어떤 밤들이 제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담담해지려 애쓰며 기다릴 뿐입니다. 그게 여러분이든 특공대이든….” -김진숙의 트위터 중에서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 먼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긴박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오늘은 김진숙이 처음으로 난간 위로 올라가 뛰어내리겠다고 저항하고, 며칠 전부터는 그를 지키는 한 조합원이 자꾸 자신이 죽어버리겠다 해서 눈물바람을 했다고 합니다.
정부와 한진중공업 회사 쪽이 2000여명의 공권력, 50명의 체포조, 120여명의 법원 집달리, 600여명의 용역깡패, 그리고 54억원이라는 손배 가압류, 추가 해고 협박 등을 내세워 지난 6월27일 기만적인 노사협의 합의서를 받아 낸 이후부터입니다. 그날 이후, 굶주린 짐승들 같은 사설용병 용역들에게 둘러싸인 85호 크레인은 무슨 중세 봉건영주의 사설감옥이라도 된 듯합니다. 그들은 감옥의 죄수보다 못합니다. 전기도 통신의 자유도, 면회·접견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마치 일제 치하의 생체실험장 731부대 같습니다. 얼마만한 모멸과 치욕, 자극을 받아야 사람이 자제력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아우슈비츠 같습니다. 그곳에서 지금 한 여인이 190일째 밤마다 모든 신경세포가 사시미 칼끝이 된 채 쇠파이프와 볼트 한 자루를 쥐고 잠든다고 합니다.
김진숙, 그를 살려야 합니다. 그를 지키기 위해 다시 크레인에 올라간 4명의 아름다운 동료들이 다시 용산의 아픔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가난한 빈농의 딸로 태어나 열다섯살에 가출한 우리들의 아이를 지켜야 합니다. 입학식 날 교복이 없던 아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육성회비가 없어 쫓겨나던 아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송아지가 아프면 학교에 갈 수 없던 아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하얀 벽 위로 새카맣게 기어오르던 빈대에 물어뜯기는 기숙사’에서 살던 우리들의 누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아침저녁으로 신문 배달을 하고, 낮 시간에는 다방을 돌며 땅콩을 팔고, 우유 배달, 샴푸·세제 외판원을 하던 우리들의 꿈을 지켜야 합니다. 타이밍을 삼키며 미싱을 밟고, 배차주임과 기사들에게 삥땅을 빌미로 한 알몸수색을 당하던 여성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 노동자 민중의 설움을 벗어나기 위해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하고, 부산 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 쉰두살’의 머리 희끗한 해고 여성노동자가 된 우리들의 어제를 지켜야 합니다. 수백만 정리해고자들과 900만에 이른 비정규직의 쓰나미를 막기 위해 그가 오른 저 양심의 등대를 지켜야 합니다.
7월30일, 우리는 다시 그런 우리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지키기 위해 ‘3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100만의 피서 인파가 몰리는 부산엘 갑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가를 보내러 갑니다. 사설 특공대들이 그에게 당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에게 닿기 위해 숨가쁘게 갑니다. 2차 전국 195대의 희망의 버스를 넘어, 더 수많은 희망의 열차, 희망의 비행기, 희망의 자전거, 희망의 도보, 희망의 전동휠체어, 희망의 오토바이, 희망의 행글라이더, 희망의 배, 희망의 덤프트럭, 희망의 포클레인, 희망의 텐트, 희망의 펜, 희망의 사진, 희망의 그림, 희망의 노래, 희망의 춤, 희망의 의료, 희망의 미사, 희망의 법회, 희망의 기도, 희망의 강연, 희망의 법정이 함께 출발합니다.
가장 평화롭게 인간이 가진 위엄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러 갑니다. 만약 그래야 한다면 물대포에 더위를 식히고, 시원한 차벽 그늘에 앉아 쉬기 위해 갑니다. 저들이 주는 공포와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깔깔깔거리기 위해 가고, 집 없는 이들의 설움을 생각하며 하루 노숙을 하러 갑니다.
전세계가 7월30일 대한민국, 부산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이 세계에, 우리 서로에게 희망이 무엇인지를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김진숙이 이긴다는 것을, 우리가 이긴다는 것을, 희망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휴가에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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