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맞대면] ‘SSM 규제’ 올바른가
유통법에 이어 25일 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형슈퍼(SSM)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된다. 하지만 지난달 ‘이마트 피자’를 놓고 벌인 ‘윤리적 소비’ 논쟁처럼, 가치관의 차이는 앞으로 형태만 바꿔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많다.
SSM을 규제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정의란 무엇인가’란 물음과 닿아 있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이 문제를 마이클 샌델이 제시한 ‘정의를 이해하는 3가지 방식’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먼저, 정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라 보는 공리주의 시선으로 보면 규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 SSM 진출로 피해를 보는 중소상인보다 물건값이 싸져서 이익인 소비자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활비가 10% 절약된 가계부에 흐뭇해하는 주부의 행복이, 매출이 반토막나 자녀들 학원을 모두 끊어야 하는 슈퍼 아저씨의 비탄과 같은 잣대로 비교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란 자유주의 관점은 어떨까? 이 역시 규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소비자는 이념이 아니라 경제적 이득을 기준으로 소비하고 이런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강자와 약자를 자의적으로 갈라 규제하는 것은 우수한 것을 벌주는 것이고, 더 큰 강자(외국 유통업자)에 대한 역차별일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는 꼭 금전적 이익으로만 판단하는 개별적인 존재는 아니며, 무엇이 소비자의 이익인지는 그가 속한 사회·공동체의 가치와 조응해서 ‘구성’되는 것은 아닐까? SSM이 유통에 경쟁과 혁신을 불어넣어 투자와 고용을 늘리게 되므로 결국 자영업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논리라면? 당장 망하느냐를 고민하는 동네 정육점 아저씨에게 ‘장기적 이익’이란 얼마나 공허한 얘기일까. 대형마트 종사자의 처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란 세번째 관점에서 보면 SSM은 규제해야 한다. SSM이 자영업이란 ‘마지막 배’를 탄 이웃을 침몰시키고 그 결과 연대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망가졌을 때 사회가 부담할 갈등비용이 훨씬 커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는 다른 자리에서는 노동자·공급자이기도 하기에 지금 싸게 산 물건이 거꾸로 내 자리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수가 늘 공동선 같은 가치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기 어렵다는 게 약점이다.
이번 맞대면에 소개된 최승노 실장과 안진걸 국장의 글도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읽어보면 좋겠다.
이봉현/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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