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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이스라엘 비판이 반유대주의?

등록 2023-12-13 18:19수정 2023-12-14 02:39

서구 민주주의의 모순과 퇴행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지난 10월12일(현지시간) 경찰이 최루가스를 발포한 프랑스 파리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날 프랑스 내무부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자국 내 반유대주의 범죄가 급증했다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모든 시위를 금지했다. 파리/AP 연합뉴스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지난 10월12일(현지시간) 경찰이 최루가스를 발포한 프랑스 파리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날 프랑스 내무부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자국 내 반유대주의 범죄가 급증했다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모든 시위를 금지했다. 파리/AP 연합뉴스

[왜냐면] 이은우 | 프리랜서 저자·기자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과의 유대를 표한 이들의 집에 사람들이 돌팔매질한다. 팔레스타인 관련 소셜미디어 글에 ‘좋아요’만 눌러도 경찰이 연행해 간다. 미국에선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대학 동아리들이 해체되고, 팔레스타인 지지 발언을 한 이들이 해고된다. 영국에선 팔레스타인 관련 북투어와 음악 공연이 취소되고 내무장관은 공공장소에서 팔레스타인 국기 게양을 위법으로 간주한다. 프랑스는 친팔레스타인 시위 일체를 금지했고 독일은 시위 대부분을 해산시켰다.

반유대주의와 테러리즘을 저지한다는 명분이다. 실제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뒤 유대인 인종차별 발언과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테러 위협 등 반유대주의와 테러리즘을 조장하는 사례들이 증가했다.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정부의 역사적, 군사적 오행을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마저 반유대주의로 치부돼 묵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유대주의가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악용되고 있다. 유대인들이 겪은 역사적 박해의 반복을 막으려는 취지였지만 반이스라엘을 반유대주의로 낙인찍을 여지 또한 남겼다. 유럽과 북미 국가들로 이뤄진 국제홀로코스트기억연합이 2016년에 채택한 반유대주의의 정의와 사례는 ‘유대인의 민족 자결권을 거부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들의 정치적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고 이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외부의 압력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이를 실현하는 이스라엘 국책의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이스라엘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유대인의 땅’에 이방인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논거가 자주 등장한다.

이스라엘 국가안보부는 올해 들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불법 유대인 정착민 40만 명에게 무기를 지급했다. 지난 두 달간 이목이 가자지구에 쏠리는 동안 100여 개의 팔레스타인 공동체가 사라졌다.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 집에 불을 지르고 저항자들을 총살하거나 팔레스타인 공동체에 물과 전기공급을 끊어 이들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냈다. 인종 청소와 정착 식민지의 전형이다. 점령된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은 시설을 사용할 수 없다. 인종분리정책과 강제 이주가 역대 이스라엘 정부의 ‘자결권 행사’였다. 정착민들이 영토 확장을 계획하는 단체 대화방에 국회의원들도 있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가자지구 내 모든 팔레스타인인에게 하마스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은 가자지구를 싸잡아 “우리는 동물들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비인간화는 인종차별의 극치며 학살의 선행조건이다. 하마스 근절을 근거로 팔레스타인 공동체를 지우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스라엘 정책이 자위권과 진정한 유대 국가 건설이라는 정치적 권리 행사의 일환이니 이를 질책하는 게 곧 반유대주의가 된다. 올해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행보를 인종차별로 보는 것도 반유대주의 유형으로 분류됐다.

서구권 국가들이 인정한 반유대주의의 실례 중 ‘유대인이 언론, 정치, 정부나 사회시설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음모론 주장도 있다. 미국 대학들이 유대인 기부자들의 반발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교수진에 재갈을 물리고 막강한 유대인 단체 로비가 미국의 대내외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뉴욕에만 100만 명 넘는 유대인이 있고 미국에서 출세하려면 이스라엘에 대해 함구해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프랑스 내 50만 유대인의 결집력은 정치·경제계에서 가공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반유대주의 규탄을 가장한 친이스라엘 집회에 정치계 거물들이 대거 모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실상을 언급하는 게 반유대주의가 된다.

반유대주의의 정치화 이면에는 반무슬림주의가 있다. 프랑스 정부가 전쟁 발발 뒤 지금까지 1천건이 넘는 반유대주의 범죄가 접수됐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아랍계 이민자들이 팔레스타인 연관 문양을 흔들거나 구호를 외친 경우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각각 무슬림 인구가 100만 명이 넘고 극우파들의 반무슬림 인종차별이 극에 달한 와중에 반유대주의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정치권과 언론이 자국의 무슬림 이민자들을 증오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지지와 역사적 속죄가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반무슬림 정서에 병들어 있다. 신장-위구르 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반인륜 범죄를 성토하고 전 세계의 인권과 자유를 지향한다는 이른바 자유 진영의 모순이다.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겪은 차별과 고난을 대변하는 ‘프리 팔레스타인’의 울부짖음을 반유대주의라며 일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시위를 긍지로 삼는 서구권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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