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의 자발리아 난민캠프에서 남부의 칸 유니스 난민캠프로 피신한 한 소녀. 옥스팜코리아 제공
[왜냐면] 이선영 | 옥스팜코리아 캠페인&옹호사업팀장
안녕? 루마! 나는 루마의 엄마 피다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엄마의 직장 동료지만 사실 엄마와 만나거나 따로 연락할 기회는 없었어. 너도 알고 있겠지만 엄마의 회사는 전 세계 수십 개의 사무소에서 수만 명이 일하는 국제기구라서 서로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 그래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동료들이 하는 일에 대해 간간이 듣고는 있었지만 많은 관심을 갖지는 못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큰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늘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지.
그런데 요즘 우리는 날마다 네 엄마를 비롯한 33명의 동료들, 그리고 가자지구에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해. 지난달 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 우리는 루마의 소식도 듣고 있단다. 루마의 엄마가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차분하게 그곳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고, 우리는 그 소식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어. 빵 가게와 슈퍼마켓이 폭파되던 날, 폭격으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던 그날의 소식도 엄마 덕분에 알 수 있었어. 우리가 전쟁을 중단하고 당장 인도적 지원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알릴 수 있었지. 그곳의 상황을 확인하며 우리가 있는 곳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
그리고 며칠 전에는 루마의 열두 번째 생일 소식도 들었어.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루마가 생일날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궁금했는데 엄마가 말해주었단다. 생일날이 죽는 날이 되지 않기를 빌었다고. 사람들이 이 아이는 생일과 사망일이 같다고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루마, 세상의 어떤 아이도 생일날 죽을 것을 걱정해서는 안 돼. 세상의 어떤 아이도 마실 물도 없고 먹을 빵도 없는 배고픔 속에서, 축포 소리 대신 폭격 소리를 들으며 생일을 맞이해서는 안 돼. 전 세계는 비극적인 전쟁을 몇 차례 겪으며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하겠다고 약속했고, 혹시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민간인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거든.
루마의 엄마와 동료들은 가자지구에서 놀라운 일들을 해오고 있었어. 사람에게 꼭 필요한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을 책임지고 있었거든. 그곳의 물 97%가 마실 수 없는 물이기 때문에 정화 시설을 만들어왔고 식수와 오수처리 시설을 복구해왔어. 질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화장실을 만들었고 위생 키트도 제공해왔지. 무엇보다 가자지구가 세상과 단절되지 않았다는 것, 가자지구의 사람들 곁에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 지금은 잠시 이 놀라운 일들이 멈춰졌지만 그곳에 반드시 깨끗한 물이 다시 흐르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는 다시 연결될 거야.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루마와 루마의 가족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모든 민간인들이 안전하기를 기원하고 있어.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씩 모이면 분명히 거대한 목소리가 될 거라고, 곧 전쟁이 멈추고 가자지구와 세계가 연결되는 문이 열릴 거라고 믿어.
당장이라도 도우러 갈 수 있도록 물과 음식, 구급약품을 실은 트럭과 엄마의 동료들이 가자지구 담장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매일 아침 너의 안부를 궁금해하게 될 거야. 용감한 루마. 다시는 폭격 소리와 죽음의 공포가 너의 생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우리도 더 용기를 낼게.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할게. 그리고 당장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더 크게 외칠게.
휴전을 촉구합니다 (oxfa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