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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경쟁 위한 조사 아닌지 의문
여론조사보도 엄격히 규제해야 총선과 대선이 겹쳤던 2012년 한국은 여론조사 전성시대였다. 조사하는 미디어도 많아지고 조사방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음에도 조사의 정확성은 점점 더 떨어지는 듯하다. 특히 올해 제18대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사실상 ‘공해’ 수준이었다. 같은 날 비슷한 방법으로 조사했음에도 각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결과는 들쭉날쭉했다. 후보 지지도, 정당 지지도, 예측조사, 출구조사 등 방식은 다양했지만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선거 관련 정보 제공을 위한 여론조사라기보다는 각 언론사가 유권자를 겁박하거나 ‘충성경쟁’을 위한 조사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선거 시기에 언론사가 나름의 방식으로 여론을 조사하여 발표하는 것은 필요하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언론사의 부정확한 여론조사 보도는 투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공직선거법에서는 언론사의 여론조사 보도에 대하여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5항을 보면 조사의뢰자와 조사기관, 피조사자 선정방법, 표본 크기, 조사 지역·일시·방법, 표본오차율, 응답률, 질문 내용, 표본오차 보정 방법 등을 함께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제256조) 올해 총선·대선과 관련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공직선거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여론조사 자체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갈수록 조사분석 기법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와 같은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여론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강화에 따른 누적 표본산정의 어려움, 유선전화 중심 조사의 한계, 감청과 사찰이 가능한 억압적 사회 분위기에 따른 거짓 응답 추세, 20% 안팎에 불과한 낮은 응답률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일반적 추세다. 조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의 문제도 있다. 모든 언론사는 저비용으로 남보다 먼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싶어 한다. 표본수 확대, 표본의 대표성 강화, 응답률 제고, 과학적 보정 등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언론사에 상대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조사회사들은 주어진 비용과 시간 범위에서 ‘가능한’ 여론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 주요 언론사에 의한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여론 조작’은 이제 사회적으로 규제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공직선거법상 여론조사보도 요건 위반에 대한 징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6일로 돼 있는 여론조사 발표금지(블랙아웃) 기간도 더 늘려야 애초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재는 6일인데 이전의 추이와 비교하여 보도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를 발표하는 것과 유사한 보도가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유력 언론사의 공신력 없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는 결과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론은 민심이다. 민심을 얻고자 하는 것은 모든 정치인들의 욕망이다. 문제는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여론 ‘조작’이나 국민 ‘겁박’도 불사한다는 데 있다. 올해 유력 언론사의 무책임한 선거 관련 여론조사 보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여론조사 규제는 국민 알권리 막아 유권자가 여론동향 알지 못한다면
민심 왜곡될 위험 오히려 높아져
D-6 여론조사 공표금지마저 없애야 마음속 깊이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생각은 신념이다. 이런 신념들이 다른 사람들과 서로 공유되고 확인되면서 형성되는 것이 바로 여론이다. 그리고 여론조사란 이런 여론의 구도와 추세를 파악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번 대선에서 여론조사는 늘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언론은 매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대선 향방을 점치기에 바빴고, 정치권도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희일비를 거듭했다. 유권자들 역시 스스로가 만들어낸 여론조사 지지율 그래프의 등락을 보며 급변하는 민심의 흐름을 절감했다. 대선에서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단 여론조사의 정확성 문제이다. 여론조사마다 결과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위와 2위 후보 간 격차가 크게는 6% 이상 차이를 보이기도 했고, 후보 간 지지율 순위가 뒤바뀐 조사 결과가 같은 날 발표되어 유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여론조사 자체보다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에 더 큰 책임이 크다. 어떤 여론조사든 정확한 결과를 콕 집어낼 수는 없기에 반드시 오차범위라는 것을 명시한다. 오차범위 이내의 격차는 사실상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는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소수점 수치까지 따지며 굳이 우열과 순위를 갈라 보도한다. 정작 문제는 언론의 이런 경마식 보도에 있는 것이지 여론조사 그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다른 지적은 여론조사가 미칠 영향력에 대한 우려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이후 여론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행위자 역할을 수행하게 마련이다. 밴드왜건 효과와 언더도그 효과가 그것이다. 밴드왜건은 다수의 여론에 편승하는 사람들의 심리이며, 언더도그는 반대로 약자에게 쏠리는 관심을 말한다. 어느 쪽이 됐건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한쪽으로 몰리게 만들어 여론의 왜곡 현상을 초래한다는 비판이다. 선거법에서 D-6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것이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가 이후의 여론 동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제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앞서 이야기했듯 여론이란 나의 신념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공유되고 확인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수의 여론 지형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거나 혹은 신념을 바꾸는 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여론 형성의 과정일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행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D-6일 이후부터 이뤄지는 최신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권과 언론사가 독점하고 있는 반면 정작 주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들은 예전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아 표심을 행사한다. 참으로 부조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투표일이 임박할수록 돌발 변수들이 튀어나와 여론 구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이야말로 오히려 여론을 왜곡시킬 위험이 크다. 선거 기간 중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한층 더 보장되어야 한다. 후보자 정보나 정책에 대한 알 권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여론 동향에 대한 알 권리다. 지금 여론조사 말고 이를 온전히 충족시켜주는 다른 유용한 수단이 과연 또 있을까?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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